어린이날. 어린이를 그린 그림을 찾아보다가 발튀스(1908∼2001)의 (1933)에 눈이 멈췄다. 볼이 발그레해 온몸으로 ‘꿈나무’임을 피력하던 옛 표지 모델 어린이들과는 영 딴판인 소년·소녀가 거리에 있다. 아이와 청소년과 어른 사이에 걸쳐 있는 인물들이다. 고양이와 함께 의자 위에서 다리를 쭉 뻗은 채 누워 있거나, 나이 든 예술가가 흔들리지 않고는 못 배길 요상한 표정의 소녀들을 평생 그려온 작가 발튀스. 그가 20대 초반에 그린 이 그림은 소녀에게만 초집중했던 상태 이전의 초심, 그러니까 화가 자신이 좋아한 세계와 궁금해 마지않던 질문들이 종합선물 세트처럼 함께 있다.
거리에 있는 9명의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시간은 흥미롭다. 옷과 동작, 3등신부터 8등신까지 참 다른 군상이다. 이 그림에서 1930년대 파리에서 유행하던 옷 스타일을 발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꿈을 꾸는 자동인형들이 지나가는 거리와도 같다”고 말한 앙토냉 아르토 같은 이도 있다. 9명의 인물은 제각각 다른 극장에서 튕겨나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있는 자동인형들 같다. 지극히 개성적이고, 그렇기에 또한 상투적이다. 다 다른 의상을 입고 상이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보이지만 오래 들여다보면 엇비슷한 표정에 모두 팔다리를 벌린 채 동작을 취하며 ‘그대로 멈춰버린’ 상태를 하고 있다. 분홍 원피스에 망토를 걸치고 셔틀콕 놀이를 하는 왼쪽의 소녀, 목재를 지고 왼쪽으로 걸어가는 흰 옷의 사내와 장난감 병정을 확대해놓은 듯한 갈색 옷의 소년. 이들이 지나가는 거리는 엄숙함과 가벼움이 공존한다. 여자아이가 갖고 노는 공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발튀스는 이 알 수 없는 인물들의 출처를 물으면 뭐라 답했을까. 그는 어린 시절 흠뻑 사랑에 빠졌던 루이스 캐럴의 에서 보았던 것들의 연장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흠모했던 소재보다 흥미로운 건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발튀스가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을 흉내냈고 그 일부를 에 넣었다는 점이다. 그림 왼쪽 빨간 상의를 입은 소녀의 모습은 15세기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에 등장하는 시녀의 옆얼굴을 인용한 것이다. (프란체스카)의 한 부분에서 검은 옷 입은 여인의 뒷모습을 따왔다. 여러 개의 꿈이 겹쳐져서 그런가, 어린애의 얼굴이 어린애가 아니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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