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회 칼럼에서 이야기한 홍성민 작가는 ‘태업’ 또는 ‘파업’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어떤 예술가는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예술가들의 창작욕,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시간 외 추가 노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 그 시간만큼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 전 갤러리 현대에서 본 피터 슈라이어는 자동차 디자이너인 본업을 수행하기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그는 쉬기보다는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영역에 도전하는 것으로, 완벽한 어떤 지점보다 여기저기 별자리를 느슨하게 찍으며 움직이는 것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질문한다.
기아차가 디자인이라는 화두와 거리를 좁히고 있는 건 그의 노동 덕분이라는 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는 자동차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피터 슈라이어의 그림 (1993)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작업에는 비행기가 단골 소재로 화면 가득 등장한다. 자동차에 관해 24시간 생각해도 몸이 쪼개질 자동차 회사 부사장의 마음속엔 왜 비행기가 있는 것일까. 작은 비행기 공항이 있는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슈라이어는 청년 시절 조종사를 꿈꾸었고,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각종 장난감들 속에서 동시에 화가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어릴 때 꿈을 대리만족하려고 그림을 그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림과 비행기가 만나는 시간에 그는 디자이너가 아닌 작가로 빙의한다. 슈라이어에 따르면, 그는 ‘미래’가 아닌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려고 빈 화폭을 물감으로 채운다. 논리와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자동차 디자인에서 벗어나는 시간에 그는 경비행기 조종을 취미로 여기고 그가 다섯 살 때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동물원’을 다시 만들어본다.
빠른 붓질로 리듬감 있게 대상을 담아낸 그의 그림들은 일견 거침없다. 누군가에게 ‘나 잘 그렸지?’ 확인받는 마음도, ‘내 생각 엄청나지’ 하는 자기 확인의 과정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역시나 디자이너로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며 이런 말을 남겼다. “현대의 디자인이 미래지향적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근원은 과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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