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질문이 산적하고 남들의 물음표에 대답해야 하는 이도 많다. 가까이 보자면 114 전화번호 안내원도 그렇고, 네이버 지식인에 열심히 답을 다는 게 취미인 내 초딩 조카도 그렇다. 타인이 궁금해하는 걸 확 잡아채서 그걸 자신의 작업으로 만든다면 꽤 괜찮은 모양이 될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다른 이의 입맛에 맞는 레시피, 타인이 읽고 싶은 글을 쓰는 타자기. 그리고 상대가 궁금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그림이라면?
기산 김준근은 미스터리한 화가다. 생몰연도도 정확히 알려진 바 없고 누구에게서 화풍을 배워 어떻게 그림을 시작하고 제 방법론을 고민했는지 ‘추측’만이 있다. 분명한 것은 19세기 말 개항지인 강원도 원산에 거주하며 조선에 들어오는 외국 선교사나 무역상 등에게 자신의 그림을 팔았다는 것. 그런 연유로 지금 해외 박물관에 가장 많이 소장된 민화는 김준근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준근과 처음 접촉한 외국인 고객은 고종의 정치고문이던 독일인 묄렌도르프였다. 이후 많은 외국인이 수집·선물·교환을 통해 몸소 기산 그림의 우편배달부가 되었다.
이것은 궁금함의 그림이다. 김준근의 그림은 외국인 구매자의 주문에 따라 제작되었다. 그런 만큼 가내수공업·형벌·무속신앙 등 이전 풍속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던 소재를 다룬다. 화가는 조선을 찾은 외국인들이 입맛 다시며 알고 싶어 할 내부의 생활방식을 활기차게 그렸다. ‘파란 눈’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잠시 쓰자면, 김준근은 파란 눈의 관람자를 설정하고 그들이 궁금해할 장면만을 골라 그렸다. 파란 눈이 훗날 고향에 돌아가 이 풍경을 기억해낼 수 있도록 그림 속 사람들의 움직임은 일러스트적이다. 시집가는 날, 누군가 세상을 떠난 날이 파노라마처럼 쭉 펼쳐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묘사한다. 어떤 연구자는 그림 실력이 형편없어서 인물은 무표정하고 몸의 비율이나 동작도 어색하다고 말하지만 약간 느슨한 그림 실력 때문에 쾌활한 유머가 발견된다.
현대갤러리에서 열리는 ‘옛 사람의 삶과 풍류’전(2월24일까지)에서 김준근의 채색화를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김준근의 그림에서 비밀과 해답을 동시에 찾고 싶어 한다. 의복 규제가 완화돼 서민층도 밝은 색채의 옷을 입게 된 복식사를 읽기도 하고, 결혼 날 신부 가마에는 액운을 막아주는 호피를 덮었던 옛 풍습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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