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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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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지 않고도 함께

등록 2012-09-18 20:55 수정 2020-05-03 04:26
사진 tate.org

사진 tate.org

내 친구 중에는 세계를 둘로 쪼개 이야기하는 습관을 가진 이가 있다.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친구가 쓰는 글의 첫 문장은 세계를 두 부류로 나누고 시작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어법을 따르면 세상에는 언제나 두 부류의 사람이 있고 이 둘은 서로 말을 섞기 힘들다.

영국의 작가 루크 제럼의 프로젝트 ‘거리의 피아노’는 거리에 놓인 피아노가 작업의 장치이자 무대가 된다. 피아노는 하얀 벽으로 두른 전시장도 아니고 거리 한복판에 놓여 있을 뿐이다. 루크 제럼의 프로젝트에서 행인들은 피아노 곁으로 다가가 연주자가 된다. 누구든, 어떤 곡을 치든 피아노는 사람들을 허용한다. 피아노를 깨부수는 작가의 독자적 행위가 아니라 건반을 도·레·미·파·솔·라·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공기를 내놓는다. 오늘도 피아노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캐나다 토론토 등 세계 도시를 유랑하고 온라인 사이트(streetpianos.com)엔 피아노 치는 영상이 올라온다.

지금 이 칼럼에서 이야기하려는 가브리엘 오로스코의 작품 (Until You Find Another Yellow Schwalbe·1995)는 다른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하지 않으면서, 역설적으로 ‘함께’하는 작업이다. 같이 칠 피아노도 없고 함께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지만 다른 존재의 접촉지대가 있다. 작업실 없이 좁은 아파트에서 작업하며 다른 도시를 이동했던 1990년대 초반의 가브리엘 오로스코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던 시절 작업실보다는 중고 바이크를 구입해 거리를 돌아다녔고 여기저기서 작업했다. 1960년대 동독에서 생산돼 당시 유행했던 바이크 슈발베를 타고 도시를 누비던 작가는 같은 기종의 오토바이를 탄 이들과 거리에서 짧은 찰나의 ‘안녕’을 쉴 새 없이 나누며 질주했고 주차돼 있는 많은 슈발베를 보았다. 가브리엘은 길에서 슈발베를 찾을 때마다 옆에 자신의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두 바이크의 짧은 공존을 증명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총 40장의 사진 연작으로 구성된 이 작업은 도시의 각각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우연히 길에서 조우한 두 대의 슈발베의 앞모습, 뒷모습, 측면 그리고 바퀴가 얽혀 있거나 떨어져 있는 모습을 포함해 두 존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이한 동작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같은 도시에 함께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같지만 다른’ 오토바이 찾기는 작가에 따르면 “낯선 도시를 알아가는 단서였으며 도시를 이해하게 돕는 소중한 수단”이었다. 아주 잠깐 접촉했던 바이크들은 그러고 나서 전혀 상관없는 다른 길로 달려갔을 테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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