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제7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시티 서울 2012)의 제목은 ‘너에게 주문을 건다’였다.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노래에서 따온 것인데, 가사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구절은 “아니, 아니,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야. 네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상관없어”다.
1층 전시장에서 본 홍성민의 (Juliettttt)은 셰익스피어의 에서 줄리엣만 데려와 주문을 걸고 있는 작품이다. 2010년 서울의 한 극장에서 선보인 작업은 영상으로 기록됐고, 다시 사각형의 검은 전시장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작품 속에는 줄리엣이 5명 등장한다. 무대에서 ‘줄리엣’은 여주인공 한 명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가 줄리엣이라 우기는 다섯 명의 이름이다. 작가 홍성민은 다섯 명의 연극 배우를 다섯 연출가들에게 보냈고 훈련을 통해 제각각 다른 스타일의 줄리엣을 연기하게끔 했다.
결국 무대에는 나름의 드레스를 차려입은 줄리엣들이 높고 낮은 목소리로, 때로 광기에 찬 울분과 고요함을 오가며 텅 빈 무대에서 제 연기에 몰입한다. 마치 요즘 각각의 대통령 후보가 최적의 대통령임을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줄리엣들은 하나뿐인 ‘줄리엣’이라는 믿음이 허구일 수 있음을 계속 노래한다. 각자의 템포에 맞게 줄리엣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연기는 여러 개의 진실, 여러 개의 지휘, 여러 개의 각성이 가능할까 질문하게 한다. 하지만 서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줄리엣 주문에 걸린 ‘줄리엣들’을 바라보는 게 결코 쉽지 않은 혼돈의 시간임을 느끼게 한다.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극’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는 작가는, 현실의 노동 상황에 대한 교란도 서슴지 않는다. ‘미디어시티 서울 2012’ 오픈 날에는 사자탈을 쓴 사자(연기자)들이 파업을 벌이듯 전시장 앞에 누워 있게 했다. 사자들은 춤추지 않고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대자로 누워 있었다. 작가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하는 병사들이 무대 뒤에서는 그 위엄이 온데간데없이 쉬는 데서 착안했다고 한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파업하는 대통령 후보는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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