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 그림 때문이다. 태풍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밧줄을 목에 걸고 리포트하는 기자들이 출현한 것은. 대자연의 변덕과 재앙 앞에서 휘청거리는 인간의 초상화를 이번 태풍 보도 뉴스에서 하릴없이 보았다. 귀한 목숨까지 앗아간 태풍 볼라벤의 위력을 전달하는 미디어의 역할이야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바람 앞에서 벌이는 기자들의 사투는 테마파크관에 있을 법한 ‘날씨 체험’을 보는 듯 인공적으로 느껴졌다. 막다른 공간 설정, 폭풍우 속에 선 오직 한 명의 개인, 미래를 알 수 없는 계시와도 같은 태풍의 향방. 그림 를 180도 반전시켜놓은 현대판 장면이었다.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의 풍경화 (1818)는 자연 앞에 올곧이 선 한 인간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는 긴 코트를 나부끼며 명상하듯 안개 낀 바다를 바라본다. 14세기 화가 조토 디본도네도 예수 곁에 등 돌린 여인들의 모습을 그려넣은 바 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처럼 화면 정면을 차지한 뒷모습은 흔치 않았다. 태풍 볼라벤의 진면목을 얼른 알고 싶어 했던 미약한 우리들처럼, 후세의 많은 연구가들도 프리드리히가 그려낸 이 남자의 앞 얼굴을 홱 뒤집어보려 애썼다. 혹자는 남자의 옷이 나폴레옹에 대항한 독일 군대의 군복과 유사하다는 데 착안해 애국심을 읽어냈고, 다른 이는 방랑자의 명상하는 모습이 삶의 마지막을 추모하는 죽음의 그림자와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를 대표하는 프리드리히는 장엄하고 신비한 자연과 인간을 팽팽한 공간 구도 속에 불어넣었다. 풍경을 그린 것도 뒷모습을 그린 일도 그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한 공간이 안개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더욱 크고 숭고하게 보이고 상상력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베일을 쓴 소녀처럼”이라던 작가의 말과 같이 풍경과 인간 모두 동시에 ‘베일에 싸인 것처럼’ 신비한 마음을 그려낸 건 그가 처음이었다. 말하자면 그가 질문한 것은 ‘베일’, 특정한 남자 백작에게 베일을 씌움으로써 누구든지 이 뒷모습의 사내가 경험했던 숭고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볼라벤의 위력 때문에 창문을 닫고 집에 머물던 차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태풍을 뚫고 배달된 것은 가족이 주문한 등산 스틱. 며칠 전 폭우를 뚫고 한라산 정상을 등반했지만 백록담은 비바람·구름에 가려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것을 위무하기 위한 도구였다. 앗, 그림 속의 이 남자도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동네 뒷산만 가도 벼랑 끝에 서는 위태로운 산악인들의 뒷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굳이 낭떠러지 가까운 곳에 가서 야호를 하기도 하는데 다들 안전에 주의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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