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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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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털 앞 가을은 절정

변상벽, <국정추묘>(菊庭秋猫)
등록 2012-10-09 17:52 수정 2020-05-03 04:26

‘고양이를 찾습니다’ 전단지를 자주 본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고양이 전상서. 고양이가 이 주인의 마음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단지에는 가족을 잃어버린 애통한 심정이 묻어난다. 트위터를 통해 잃어버린 냥이들을 찾는 이도 적지 않다. 냥이 가족들은 냥이의 키, 몸무게 같은 정보부터 까칠한지 다정한지 성격까지 고양이 인터폴에 수배한다. 애완견·애완묘들은 주인을 닮는다. 반사거울처럼 주인의 표정까지 닮아 있는 산책 중인 강아지들을 보면 깜짝 놀란다.

조선 후기의 화가 변상벽(1730~연도 미상)은 고양이를 잘도 그렸다. 고양이의 작은 몸짓 하나까지 잡아냈는데 붓을 잡으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는 말이 어눌했고 사람이 많은 곳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애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변고양이’였다. 그림 (菊庭秋猫·연도 미상)는 가을 들국화를 곁에 두고 웅크려 앉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보여준다. 털끝 하나하나 세세하게 솟아 경계하는 듯 어딘가 노려보는 이 고양이의 윤기 잘잘 흐르는 풍성한 깃털은 가을의 절정을 얄미울 만큼 만끽한다.

도화서 화원이던 변상벽의 동물 그림을 얻고자 그의 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놀라울 만큼 생동감 넘치는 관찰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말’을 하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실로 고양이의 ‘묘’(猫)자가 70살 노인을 뜻하는 한자 ‘耄’와 생김이 비슷해 그의 고양이 그림은 효를 뜻하거나 70살 노인의 생신을 축하하는 장치로 많이 쓰였다. 가족 간의 우애와 부모를 향한 효를 은유하는 고양이 그림은 지금 봐도 따분하지 않다.

변상벽은 나비를 돌아보는 몸짓, 앉아 있는 자세, 나무를 올려다보는 동작 등 고양이들이 생활하는 세심한 장면을 관찰했다. 그림 안에는 ‘난 무엇을 가장 잘 그릴 수 있는가’에 관한 집중력과 결기가 담겨 있다. 화가는 생전에 “나 또한 산수화를 배웠으나 그들 위에 올라설 수 없기에 사람과 친근하여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다”며 “넓고 조졸한 재주보다 한 가지에 정밀하여 이름을 이루는 것이 낫다”고 했다. 고양이가 움직이는 방식(생리)과 오늘을 보내는 표정(생김새)을 화가의 눈과 손으로 만들며 변상벽은 “마음속에 수많은 고양이들을 담았노라” 말했다. 지금의 그 누구도 수백 년 전의 ‘변고양이’만큼 고양이의 생기 넘치는 동작을 담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고양이 사진도 충분히 귀엽지만 ‘변고양이’의 집착에는 못 미친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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