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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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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가 못생겼을 때

등록 2012-12-07 14:36 수정 2020-05-02 19:27

공주가 못생겼을 때 화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눈·코·입 하나 다르지 않게 있는 그대로 그리는 방법이 있을 테고, 눈 딱 감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어떤 딴 나라의 미인을 생각하며 붓질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궁정)화가만이 알고 있는 얼마나 많은 방법이 있을까. 알게 모르게 모델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게 하면서, 또한 그가 그리고 싶은 어떤 화면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갈등 말이다. 권력자의 얼굴을 그리는 시간은 화가로서의 재능과 배짱을 스스로 시험해보는 결투의 장이다.

궁정화가 안드레아 만테냐는 등이 굽은 지도자의 신체를 과감하게 ‘그냥’ 그리기도 했고, 스페인 수석 궁정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별로 예쁘지 않은 마르가리타 공주의 모습을 여인의 기분 변화가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게 담아낸 바 있다. 그 가운데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초상화는 반은 솔직하고 반은 거짓인 그림이다. 그가 그린 (1470년께)은 미모가 조금 부족해 뵈는 용병 출신 공작 부부를 그린 것으로, 힘없어 보이는 두 부부는 썩 선남선녀처럼 보이지 않는다. 피부의 질감부터 극심한 매부리코와 턱주름은 공작을 미화시키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화가는 깊이 고민한 것 같다. 사실 화가는 공작의 옆모습을 그리는 선택으로 모델을 깊이 배려했다. 1455년 창 시합에서 오른쪽 눈을 잃은 펠트로 공작은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었고, 화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공작의 ‘왼쪽’ 얼굴만을 그려주었다. 두 부부가 정면을 보고 있었더라면 지금과 무척 다른 이미지였을 것이다. 이 그림의 뒷면에는 초상화의 주문자가 도달하고자 했던 이상향의 세계가 여러 도상으로 축약돼 담겨 있다. 프란체스카는 칼과 저울의 도상으로 정의를, 백발의 노인 얼굴로 신중함 등을 새겨넣어 공작 부부가 가슴에 품었던 이상화한 이미지를 구현해주었다.

대상을 이상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대중가요 을 개사해 기이한 요소들을 짬뽕해낸 선거 로고송 제작 기술은 놀랍다. 에스라인도 되고 싶고 섹시하고도 싶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요즘 늘 빨간색 옷을 입는다. 노래뿐 아니라 박 후보의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도 깜짝 놀랐다. 6년 전의 상처를 불러내다니. 오늘날 궁정화가가 다시 등장한다면 그는 어떤 배경에 대통령 후보들을 그려낼까. 지구본도 소용없고 세계지도로도 담아낼 수 없는 이 집권을 향한 야망이여. ‘인물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 또한 듣고 싶은 지도자의 눈빛을 보는 일은 참 큰 인내심을 요한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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