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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화가 김종필과 루소

등록 2013-01-19 01:28 수정 2020-05-03 04:27
945호 현시원의 질문의 재발견

945호 현시원의 질문의 재발견

헌책방에서 책상달력 하나를 본 적 있다. 정치인 김종필이 그린 그림들로 이뤄진 페이지가 인상적이었다. 몇 년도 달력인지 적었다면 좋았을걸. 그림 실력보다 어깨 힘이 들어간 장면은 붓을 잡은 이의 포부가 담긴 사진이었다. 기억나는 건 그림이 아니라 그것뿐이다. 화구를 들고 찐빵 모자 비슷한 것도 머리에 쓰고 뚫어져라 빈 종이를 응시하는 김종필. ‘한국일요화가회’의 열성 회원이었다. 윈스턴 처칠도 “난 천국 가면 100만 년은 그림을 그릴 거야”라고 말하는 ‘일요화가’였다.

앙리 루소(1844∼1910)는 일요화가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1905년 루소가 그린 만 해도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하고, 선생님처럼 말하면 전체 구도나 인물과 검은 개의 형태가 부자연스럽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미술학교에 다니지 못한 일요화가니까. 그런데 이 말은 틀렸다. 세계 여러 미술관에 루소의 작품이 걸려 있고 작가는 이미 원시적 화풍, 초현실주의 등으로 거장의 화려한 겉옷을 입었다. 그런데 또 이상하다. 다른 작가들보다 유난히 루소는 그의 생애나 일화 없이는 작품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듯 보인다. 젊은 시절 파리의 세관원이었고 나이 쉰이 다 되어서야 첫 전시를 열었다. 파리의 여럿 작가들을 알게 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던 건 예순 무렵이었다. 두 명의 아내를 저 세상에 떠나보내는 등 화가가 아닌 아마추어 화가로 점철된 생이라는 묘사가 가득하다. 작가의 삶과 작품을 일대일로 연결하는 것만큼 따분한 일도 없지만 루소는 ‘일요일의 화가’가 자신의 목표였다. 아마추어나 애호가를 은유하는 일요일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그림을 그리는’ 일요일로서 말이다.

루소의 그림을 두고 비평가들의 논란도 뜨거웠다. “웃고 싶으면 이자의 그림을 놓치지 말고 구경하라”고 조롱할 만큼 비웃음이 많았다. 하지만 을 쓴 알프레드 자리는 루소 작품에 담긴 에너지를 처음 인정했다. “규칙에서 벗어나는 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해할 수 없으면 몽땅 바보짓, 미친 짓이라고 밀어두면 속 편하다.” 루소야말로 규칙을 지키지 않는 대가라는 것이다.

MBC 에서 작곡하는 녹음실의 박명수는 ‘일요작곡가’라 해야 할까. 자신의 창작욕을 발휘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맛없는’ 음식을 던져놓는 식당 주인처럼 이기적인 이도 없을 것이다. 일요화가나 일요작곡가가 꼭 그런 식당 주인 같다는 건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냥 작가들보다 더 복잡미묘한 에고다. 이 그림 속에도 화가는 있다. 신부 뒤의 콧수염 단 남자가 앙리 루소를 닮았다.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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