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기자에게 ‘제보’는 신의 말씀이다. ‘기자님’으로 시작하는, 전자우편함에 꽂힌, 근본을 알 수 없는 제목의 파일을 열어보는 그 순간만은, 전능한 힘이 소실점 없이 펼쳐지는 착각에 빠진다. 대통령도 날려버릴 기세다. 알고 보니 그게 뱀의 꼬드김이었어도, 혹은 마왕의 유혹이라 하더라도.
기사 한 방으로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날아갔다. 기자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딥스로트’(내부고발자) 같은 이가 자신을 찾아올 날을 기다린다. 백마 타고 올 초인은 없는데도 말이다. 차라리 로또 1등을 맞고 말지.
제보는 꽝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사자들은 구구절절한데, 기자가 보기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거나, 얘기가 안 되거나,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많다. 인공위성이 자신을 감시하고, 국가정보원이 머릿속에 추적장치를 달고, 내 전화기를 도청하고 있다는 제보들은 고전에 속한다. 어느 진지한 제보자는 이랬다. “기자님이 인공위성이 머리 위를 따라다닌다는 제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저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다만 이 말만 들어주세요. 혹시나 나중에 이게 사실로 드러나면 어쩌실 거죠?” 가끔 이 대화가 떠오른다. 이건 대박이었을까? 대통령을 날릴 수 있었을까?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떠올리며, 기자는 요즘 조금은 겸손해지기로 했다. 아무리 황당한 일도 사실일 수 있으니까. 가끔 두툼한 제보 편지가 날아들기도 한다. 손글씨로 꼭꼭 눌러쓴 것도 있고, 기자 이름을 쓸 칸만 비워두고 제보 내용을 복사기로 돌린 경우도 있다. 다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대박은 아니어도 알찬 제보들은 종종 있다.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비리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밤이 되자 서울중앙지검 조사실로 음식 배달이 이어졌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명박 후보 최측근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를 사랑하는, 혹은 이명박 후보를 싫어하는 배달원의 알찬 ‘제보 배달’이었다. 2008년 삼성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일 때는 긴박한 사연이 많았다. 삼성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문서를 갈아버리고 있다는 내부 제보들은 아름다웠다. 어느 평범한 운전기사는 이랬다. “경기도에 있는 삼성 공장 앞을 지나는데 문서 파쇄 트럭이 나오는 것을 봤다. 지금 추적 중이다.” 특별히 감사드릴 기회가 없었는데,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계속 부탁드린다는 말씀이다.
게으른 기자가 받아본 가장 큰 제보는, 뭐였더라. 음… 별로 없네. 제보도 발로 뛰고 부지런한 이들에게 걸린다더니. 앉아서 남들 다 보는 인터넷 뒤진다고, 취재원들과 술이나 퍼마신다고 나올 것은 없다는 얘기다. 요즘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직업병 관련 증언을 기다린다. 독자 제현의 많은 전자우편 부탁드린다. 날로 먹겠다는 말…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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