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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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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의 국유화

등록 2012-04-25 15:13 수정 2020-05-03 04:26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뭐라 불러야 할까. ‘4대강 (죽이기) 사업’에 공기업을 동원하고 ‘MB 물가지수’ 따위를 만드는 걸 보면 박정희식 관치경제 같기도 하고, 공기업 등 공공재산을 ‘돈 많은 자들’에게 내다팔 궁리만 하는 걸 보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같기도 하고….
인천국제공항은 공기업인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영한다. 7년 연속 ‘세계 최고 공항상’을 받은 세계 공항업계의 ‘지존’이다. 8년 연속 흑자 행진 중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그런데 MB 정부는 인천공항을 ‘선진화’한다며 지분을 사적 자본에 매각하려고 한다. 미국 조차 ‘왜 다른 공항은 인천공항처럼 될 수 없나’라는데, 뭘 더 선진화하겠다는 건가. 공기업은 공유재산이다. 흑자를 대주주가 사실상 독식하는 사기업과 다르다. 그러니까 인천공항 지분 매각 논란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공유재로 묶어둘지, 특정 사기업에 넘길지를 둘러싼 사회적 쟁투다.
MB 정부와 여러 지자체가 ‘공기업 선진화’ ‘민자투자 사회기반시설 조성’ 등의 명목으로 벌여온 일들의 실상이 대체로 이렇다. MB 정부가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 노선(수서~부산·목포)에 코레일 외에 민간사업자를 유치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노선의 총사업비는 15조원 남짓인데, 민간사업자의 초기 투자비는 그 3%도 안 되는 4천억원 수준이다. 철도 운송의 공공성을 고려해 적자 노선을 감당해야 하는 코레일과 ‘푼돈’ 투자로 흑자 노선에만 뛰어들 민간업체 사이에 무슨 경쟁? ‘경쟁체제로 운임을 15% 낮출 수 있다’는 MB 정부의 선전은 사기성 미끼에 가깝다. MB가 서울시장일 때 계약한 서울 지하철 9호선 사업권도 마찬가지다. 9호선의 총건설비는 3조5천원인데, ‘서울시메트로9호선(주)’가 전체의 16%인 5485억원만 투자하고 30년간 노선 운영권을 확보했다. 적자가 나면 서울시 재정으로 메워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제도도 적용됐다. 이에 따라 지난 3년간 서울시가 710억원을 보전해줬다. 이처럼 MRG 제도가 적용된 이른바 민자투자 사업은 인천공항고속도로, 우면산터널, 서울~춘천 고속도로 등 전국적으로 23개 사업에 이른다. MRG 제도는 재정 파탄 우려로 2009년 폐지됐다. 하지만 기존 MRG 적용 사업은 최대 30년까지 재정으로 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 국무총리실 자료를 보면, MRG 제도 탓에 부산~김해 경전철에 20년간 1조6천억원, 용인 경전철에 30년간 2조5천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줘야 한다.
대부분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데도 ‘민자투자 사업’이라고 부르는 사기의 논리는 단순하다. 우선 수요 예측을 최대한 뻥튀기한다. 그래야 사업 승인 받기가 쉽고, 건설비도 부풀릴 수 있다. 뻥튀기 사업의 필연적 적자를 보전하느라 골병이 드는 건 세금 내는 국민이다. 토건족, 투기자본, 관련 공무원들은 국민의 고혈로 차린 잔칫상을 즐길 뿐 어떤 사회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핵심은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국유화’다. MB 정부의 신앙인 ‘공기업 선진화’의 실체 또한 빛의 속도로 늘고 있는 공기업 부채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사채 발행 잔액은 2007년 말 120조원에서 지난해 말 283조원 남짓으로 폭증했다. 빚이 느는 게 선진화인가?
말과 글은 정신의 집이다. 공자가 정명(正名)을,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는 만물의 척도”라고, 조지 레이코프가 ‘프레임’(생각의 틀)의 중요성을 강조한 까닭이다. ‘공공재 갈취’를 ‘선진화’ ‘민영화’ ‘민자사업’ 따위라 불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주술에 놀아나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 소중하다.
이제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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