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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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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를 위하여

등록 2012-01-18 10:48 수정 2020-05-03 04:26

조카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그러곤 입을 닫았다. 귀동냥한 사연은 이렇다.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돕다가 왕따가 될 처지에 몰렸다.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별다른 조처가 없었다. 사정은 악화됐다. 자퇴 결심을 학교에 알렸다. 학교가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조카가 마음의 문을 닫은 뒤다. 조카는 요즘 집 근처 도서관으로 통학한다.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가끔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잡담을 하다 교양도서 따위를 안겨주는 게 전부다. 어쭙잖은 ‘조언’이라도 하고 싶은데, 조카는 ‘그 얘기’를 꺼내길 꺼린다. 참고 기다릴 수밖에. 어차피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제 갈 길을 걸어갈 주체는 조카 자신이니까. 언젠가 조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을 때, 외삼촌도 옆에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을 뿐이다.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조카가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관계의 망에 사랑과 배려가 더 많이 깃들수록 좋다. 그날이 머지않기를.
이 얘기를 꺼낸 건,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나는 학교 폭력 ‘문제’가 가슴을 후벼파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학교는 통제불능의, 아비규환이다. 시험 성적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정글식 상대평가는, 또래를 친구가 아닌 경쟁자나 적으로 대하라고 강요한다. 홉스적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다. 엄마·아빠는 돈 버느라 바빠 자식 마음을 돌볼 겨를이 없다. 청소년들이 고립돼 있다. 관계의 망이 끊긴 지 오래다. ‘학교 폭력’의 토양이다. “장남 삼아 했다”며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가해 학생’을 격리하고 처벌하면 학교 폭력이 사라지나. 웹툰을 검열하고 인터넷 게임 ‘셧다운제’를 강화하면 학교 폭력이 사라지나. 미국처럼 ‘스쿨 폴리스’를 두고,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들이면 학교 폭력이 사라지나. 다들 안다. 단속과 처벌, 경찰과 감옥으로는 학교와 학생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권리가 없는데 어떻게 책임을 느낄 수 있나. 자존감이 없는데 어떻게 타인을 존중할 수 있나.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소동은, 이른바 ‘어른들’이 그들의 자식이거나 손주일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대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음을 드러낸다.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12월19일 서울시의회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의결하자, 교육과학기술부가 반발했다. 조례 제정을 추진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감옥에 갇혔다는 이유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교육감 권한대행으로 임명한 이대영씨는 1월9일 시의회에 서울학생인권조례 재의를 요구했다. “시의회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던 이대영씨가 약속을 뒤집고 밝힌 ‘재의 의견’이 가관이다. 조례가 ‘학교 자율성’을 침해하며, 조례의 ‘학생인권위원회’가 “교육감의 인사권과 정책결정권을 제한할 소지가 있”고, ‘집회의 자유’ 규정이 “학교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며, ‘임신 또는 출산,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규정이 “그릇된 성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학생에게 인권은 사치이며 ‘교육 목적(?)의 차별과 제한’이 지속돼야 한다는 노골적 주장이다. ‘차별 없는 인권 존중’을 강조한 세계인권선언 등 국제인권법과 대한민국 헌법은, 이들에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잡소리다. 이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시의회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하지 않으면 무산될 처지에 몰렸다.
이대영씨가 재의를 요구한 날,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청소년이 교육현장의 중심이며 인권의 주체라는 것을 확인시켜 우리 사회의 인권 옹호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를 ‘제1회 이돈명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학교 폭력을 방치·조장하는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교과부와 이대영씨인가,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와 천주교인권위원회인가.
이제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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