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4월2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고등교육 기관과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좌충우돌이 이어진다. 전세계를 향해 무차별 ‘관세 폭탄’을 퍼부은 이른바 ‘해방의 날’이 불과 20일 남짓 전이다. 전세계 모든 무역 상대국과 전면전도 불사할 것처럼 굴더니, 은근슬쩍 ‘90일 유예’를 발표했다. 기상천외한 고율관세(145%)를 앞세워 압박의 강도를 높이던 중국한테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어정쩡한 태도로 돌아섰다. 들쭉날쭉 맘대로다. 세계 경제도 덩달아 출렁인다. 대체 무슨 상황인가?
“결국엔 아주 좋은 거래가 성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기업이나 국가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이 직접 관세율을 정하게 될 것이다. 향후 2~3주 안에 관세율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4월23일(현지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 직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율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밝혀놓고, 협상 시한을 ‘향후 2~3주’로 앞당긴 모양새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 관세전쟁 재점화’란 식의 보도가 쏟아졌다. 반면 중국과 관련해선 “매일 접촉하고 있다”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대중국 관세율은 145%로 매우 높다. 아직 관세율을 낮추진 않았다. (관세율 145%가 유지되면) 중국은 우리가 거래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중국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겠다. 145% 관세율은 상당히 낮춰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관세 협상을 총괄하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시엔엔(CNN) 방송은 베선트 장관이 4월22일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체이스’ 주최 토론회에서 “미-중 무역 전쟁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이른 시일 안에 갈등의 수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145%에 이르는) 관세는 사실상 수출금지 조처에 해당한다. 이래선 무역 거래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고율관세 부과의 목적은 중국과 완전히 거래를 끊거나 탈동조화(디커플링)하려는 게 아니라 무역수지를 재조정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단다. 베선트 장관은 같은 날 기자들과 따로 만나선 “중국과 통상적인 무역 관계를 복원하는 데 2~3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선 선거운동 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라고 강조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전세계를 겨냥해 고율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한 건 4월2일이다. 그는 불과 1주일 만인 4월9일 돌연 중국을 제외한 모든 무역 상대국에 부과한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자명했다. 고율관세 부과에 따른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 금융시장이 끝 모를 추락세로 빨려든 게 컸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정치’를 금융시장이 제어한 셈인가?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인 투자 자산으로 평가된다. 채무 보증의 주체가 미국 정부이니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통상 투자자들은 주식과 채권에 분산투자를 한다. 경기가 활기를 띨 땐 주가가 오르고, 경기가 침체될 때는 채권 수익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위험은 피하고 수익률은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투자 방식인데, 항상 들어맞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2022년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를 잡기 위해 이자율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동반 하락한 바 있다. 경기는 반등세를 보이지 않는데 물가는 오르고, 이자율이 높아지면서 장기적으로 채권 수익률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한 탓이다. 비슷한 현상이 4월2일 고율관세 부과 발표 직후 미국에서 재현됐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2025년 4월23일 워싱턴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공동으로 마련한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23년을 기준으로 약 27조7200억달러에 이른다. 미국의 금융시장에 몰린 자산 총액은 이보다 2배가 넘는 약 58조달러다. 미국은 ‘정치권력’이 아닌 ‘금융권력’이 지배하는 나라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 규모는 미국 GDP와 엇비슷한 약 28조달러에 이른다. 고율 상호관세가 발효된 4월9일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0.19%포인트 오른 4.51%까지 올랐다. 30년 만기분의 수익률은 5%를 넘어섰다. 채권의 가격과 수익률은 반비례 관계다. 이자와 만기 상환액이 정해져 있는 채권을 높은(낮은) 가격에 매입하면 그만큼 수익률이 낮아(높아)지는 이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90일 유예’를 발표하면서, “국채 시장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이 좀 불안해하는 것 같더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채권시장 외에 한 가지 더 살펴볼 게 있다. 약 25조달러 규모로 평가되는 미국 사모펀드 시장이다. 자산운용사가 투자자에게서 자본을 출자받아 기업이나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사모펀드가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기업 인수합병을 통하거나, 주식시장에 상장해 수익을 거둔다. 고율 상호관세 부과로 물가 인상과 주식·채권 등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면 인수합병도 기업공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투자금을 제때 회수하지 못한 사모펀드는 유동성 위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권력이 정치권력을 제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75개국과 관세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베선트 재무장관은 헤지펀드 매니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투자은행가 출신이다.
“주가와 채권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데다, 달러화까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전후로 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돌아선 달러화 가치는 4월1일 이후 급락하며 고점 대비 9%까지 떨어진 상태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4월16일 이렇게 보도했다. 이어 “(금융위기를 겪였던) 2008년과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됐던) 2020년 주식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달러화 가치는 상승했다. 위기감을 느낀 투자자들은 통상 안정적인 미국 국채로 몰린다. 이 과정에서 다시 달러화 가치가 올라간다. 그런데 지금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 투자를 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인 무역정책 탓에 한때 공고하기만 했던 미국의 기업(주가)-정부(채권)-화폐(달러화)에 대한 투자자의 믿음이 깨지고 있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여유’를 부리고 있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세계가 아니라 미국이다. “미국에 맞서지 않겠다”는 권한대행 체제가 협상을 서둘러선 안 되는 이유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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