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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즉강끝’ 대결…5년 만에 적대적 공존 부활

북 군사정찰위성발사 뒤 9·19 군사합의 사실상 파기… 남쪽 최전방에 재량권 주고 북쪽 GP 추정 구조물 세우고 중화기 반입 등 ‘적대적 공존’ 부활
등록 2023-12-01 22:14 수정 2023-12-03 17:17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11월23일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을 방문하자, 도열해 있던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11월23일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을 방문하자, 도열해 있던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의 후폭풍이 거세다. 남북이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막기 위해 2018년 9월19일 체결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 남쪽이 ‘일시적 효력 정지’를 발표하자, 북쪽은 비무장지대(DMZ) 최전방 감시초소(GP)를 복구하고 중화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남쪽도 곧바로 ‘상응조치’를 예고한 상태다. 맞대응의 상승효과로 긴장은 높아지는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분단사를 관통해온 남북의 ‘적대적 공존’이 윤석열 정부 출범 18개월여 만에 완벽하게 복원됐다.

평양종합관제소로 거의 출근한 김정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한 2023년 11월21일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로 거의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11월21일 밤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발사를 지켜본 뒤, 이튿날 오전 평양종합관제소를 찾았다. 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는 11월22일 오전 9시21분에 수신한 태평양 지역 괌 상공에서 앤더슨 공군기지와 아프라항 등 미군의 주요 군사기지 구역을 촬영한 항공우주사진을 보시였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봤다는 위성사진의 위치를 두고 새겨볼 필요가 있다. 북쪽 특유의 ‘프로파간다’(선전·선동)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1월23일엔 일정이 많았다. 김 위원장은 정찰위성 발사를 주도한 ‘비상설위성발사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고 격려했으며,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을 방문해 역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저녁엔 평양 목란관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명의로 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경축하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에 자리한 목란관은 국빈용 연회장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회에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불리는 딸 김주애, 부인 리설주와 함께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11월24일에도 평양종합관제소를 찾았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적측지역(남쪽)의 목포, 군산, 평택, 오산, 서울 등 중요 표적지역과 우리나라(북쪽)의 여러 지역을 촬영한 사진자료”를 봤다고 전했다. 통신은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이 김 위원장에게 “25일 오전 적측지역 촬영 계획”을 보고했다고 덧붙였는데, 이유가 있다.

다음날인 11월25일에도 김 위원장은 관제소를 찾았다. 남쪽 진해, 부산, 울산, 포항, 대구, 강릉 등 ‘중요 표적지역’을 찍은 사진이 준비돼 있었다. 통신은 정찰위성이 “부산시 남구 룡호동에 위치한 군항(남쪽 해군작전사령부)에 정박해 있는 미 해군 핵항공모함 ‘칼빈슨’호도 포착했다”며 “(미국 하와이) 진주만의 해군기지와 호놀룰루의 히캄 공군기지 등을 촬영”했다고 전했다.

구체적 정보 공개하지 않는 게 위협적

김 위원장은 11월26일엔 ‘정찰위성 행보’를 하루 쉬었다. 대신 함경남도 제55호 선거구에서 도·시·군 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참가한 뒤, ‘어머니 공장’으로 불리는 함흥에 자리한 북한 최대 산업설비 생산공장인 용성기계연합기업소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튿날인 11월27일과 28일엔 다시 관제소를 찾아 정찰위성 관련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이탈리아 로마 △괌 앤더슨 공군기지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와 뉴포트뉴스 조선소 △미국 워싱턴 백악관과 펜타곤(국방부) 등을 찍은 사진을 보고받았다.

국방부는 2023년 11월27일 북한이 동부전선 최전방 감시초소를 복원하는 정황을 지상촬영장비와 열상감시장비가 포착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공개한 11월24일 비무장지대 초소로 무반동총 등 중화기를 반입하는 북한군 모습. 연합뉴스

국방부는 2023년 11월27일 북한이 동부전선 최전방 감시초소를 복원하는 정황을 지상촬영장비와 열상감시장비가 포착했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공개한 11월24일 비무장지대 초소로 무반동총 등 중화기를 반입하는 북한군 모습. 연합뉴스

정찰위성 발사 여드레째인 11월29일에도 김 위원장은 관제소를 찾았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주의 쌘디에고 해군기지를 촬영한 자료, 일본 오끼나와현의 가데나 공군기지를 촬영한 자료, 에짚트(이집트)의 수에즈운하를 촬영한 자료”를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그간 김 위원장은 △남쪽의 주요 도시와 군사기지 △괌과 하와이의 미군기지 △미 본토 서부 캘리포니아와 동부 버지니아의 미군기지 △미국의 상징인 백악관과 펜타곤 등을 찍은 정찰위성 사진을 봤다. 마침내 한반도 유사시 즉시 투입될 주일미군의 심장부인 일본 오키나와까지 등장했다. 정찰위성 사진에 나온 지역 모두 북쪽이 ‘핵공격 표적’이라고 지목한 곳이다. 김 위원장의 ‘정찰위성 행보’가 대단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북쪽이 위성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위성 발사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는 “우주는 열려 있고, 하늘을 쳐다보면 확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쪽이 발사한 정찰위성이 정상적으로 지구궤도를 도는지는 쉽게 식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북한이 위성사진을 포함해 더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너희를 들여다본다’고 하는 게 상대방에게 훨씬 위협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위성사진을 공개하면 해상도 등 기술 수준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도 북쪽이 ‘숨바꼭질’을 이어갈 가능성에 힘에 싣는다.

문 전 교수는 북의 정찰위성이 “현재로선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이란 뜻밖의 군비통제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짚었다. 그는 “군사적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정찰위성으로 상대방의 동태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게 군비통제의 기본”이라며 “북쪽이 일정한 정찰·감시 능력을 보유하는 게 역으로 오판에 의한 전쟁 가능성을 낮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9·19 합의는 완충지대 정한 정전협정 준수가 핵심”

그래서 더욱 뼈아픈 게 사실상 파기된 9·19 군사합의다. 9·19 군사합의는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 전면 중단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 평화수역화 △남북 왕래·신뢰구축 조치 강구 등을 뼈대로 한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란 공통된 인식”을 담은 2018년 4·27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후속 조처였다.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9·19 파기’를 주장한 바 있다.

2018년 9월19일 북쪽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9·19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박수를 치며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9월19일 북쪽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9·19 군사합의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박수를 치며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북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남쪽이 군사분계선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규정한 합의 제1조 3항의 효력을 ‘일시 정지’한다고 발표하자, 북쪽은 비무장지대의 재무장화에 나섰다. 남쪽 군 당국자는 11월27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군이 9·19 군사합의에 따라 없앴던 11개 초소에 관측소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만들었다”며 “11월24일부터 이곳에 무반동총 등 중화기를 반입하고 주·야간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11월28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평화를 해치는 망동은 파멸의 시작임을 적에게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적이 도발하면 ‘선 조치, 후 보고’ 개념에 따라 대응하라.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으로 단호하게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최전방에 ‘재량권’이 주어지면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비무장지대 초소 가운데 남북이 각각 최전방에 있는 11개소를 시범 철수 대상으로 정해 폭파·철거 방식으로 파괴했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한 바 있다.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은 철수했지만, ‘통일역사유물’로 지정해 보존 중이던 강원도 고성에 있는 최전방 초소에 병력과 장비를 우선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남북이 다시 체결 70주년을 맞은 정전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전직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9·19 군사합의는 비무장지대란 완충지대를 설정한 정전협정 준수가 핵심이다. 최전방 초소 철수도 정전협정 조항을 단순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는 건 정전협정 위반이며, 정전협정 준수의 법적 책임을 지는 유엔군사령부(UNC)와 마찰이 생길 수 있다. 유엔군사령관은 한미연합군사령관을 겸직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이 맡는다. 9·19 군사합의 파기로 남북의 정전협정 위반 사례가 속출한다면, 유엔군사령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북 정찰위성 추가 발사 공언

북한은 이미 정찰위성 추가 발사를 공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1월22일 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알리는 기사에서 “빠른 기간 안에 수개의 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하여 남조선 지역과 공화국 무력의 작전상 관심지역에 대한 정찰능력을 계속 확보해나갈 계획을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 제출”하겠다고 전했다. 8기 9차 전원회의는 12월 중에 열릴 전망이다.

2024년에 북이 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11월28일 제21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전체회의에서 “진정한 평화는 압도적이고 강력한 힘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언제라도 그러한 힘을 사용할 것이라는 단호한 의지에 의해서 구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신북풍’이라도 불 기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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