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바이러스, 다른 대응’. 인간이 거주하는 땅덩어리 대부분은 코로나19에 의해 점령됐다. 하지만 이 사태에 맞서는 각 나라의 대응은 같지 않다.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여기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을 소개한다. 11개 나라에 흩어져 사는 교민들에게 편지를 받았다. 같은 재난에 맞선 각 나라의 다른 대응을 들어본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 3명이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외부자의 눈으로 분석한 글을 보내왔고, 국내 코로나 최고 전문가 5명이 내부자의 시선으로 냉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좌담을 정리했다_편집자주
망설이다가 오늘도 슈퍼마켓에 가지 않았다. 수도 산티아고 38개 구 전체의 격리가 일주일 연장돼, 집 앞의 슈퍼마켓도 통행증을 받아야 갈 수 있다. 통행증 신청 사이트가 툭하면 다운돼, 급한 사람은 (통행증을 발급하는) 경찰서 앞에 줄을 길게 선다. 중학생 딸의 온라인수업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결혼기념일이지만 외식도, 쇼핑도 못한다. 초밥을 시켰더니, 배달원이 카드결제를 하기 전에 소독제를 내 손에 먼저 짜준다. 축구 소식으로 가득하던 신문의 스포츠 섹션은 달랑 두 장으로 줄었다.
며칠째 코로나19 신규 감염자는 하루 4천 명을 오르내린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취소시킨 대규모 시위로 몇 달째 텅텅 비던 거리는 이제 격리와 통행금지로 다시 비었다. “대통령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넘치던 광장에 시위대가 사라지자 대통령이 가서 사진을 찍었다. 헌법 개정을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는 10월로 연기됐다.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가 실시된 지 두 달을 넘겼다. 무장한 군인들이 단속에 나섰지만, 빈곤 지역에서는 먹고살 대책을 세워달라며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데, 안 나가면 어떻게 먹고살라는 말이냐?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집에서 죽으나 코로나19에 걸려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시위대는 외쳤다.
칠레 정부는 5월22일 빈곤 가정에 밀가루와 통조림 등이 든 식료품 상자를 나눠줬다. 새로운 코로나19 대유행의 중심이 된 중남미에 있지만, 그나마 칠레에 사는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인구당 진단검사율이 중남미에서 제일 높고, 대통령은 공항까지 나가서 새로 도착한 산소호흡기를 맞으며 철저히 준비한다는데, 주위에 이런 정부를 믿는다는 사람은 못 봤다. 빈곤과 열악한 의료체계 탓에 코로나19는 중남미에서 더 위협적이다.
콜롬비아에선 관으로 변신하는 침대 판매
브라질에선 감염자가 30만 명을 넘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하루 400명 넘게 사망하는데도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내 (두 번째) 이름이 메시아지만, 기적은 못 이룬다”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더니, 탄핵 위기에 처했다. 볼리비아에서는 보건장관이 산소호흡기를 서너 배 비싸게 사들여 부패 혐의로 체포됐다. 페루는 두 달 넘게 전 국민이 격리 상태지만 감염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에콰도르에선 치우지 못한 주검이 거리 곳곳에 나뒹군다. 콜롬비아에서는 환자가 사용하다가 죽으면 바로 관으로 바꿔 쓸 수 있는 침대가 나왔다. 석유로 먹고사는 베네수엘라에서 코로나19에 경제난까지 겹쳐 사람들이 주유소 앞에 몇 시간씩 줄을 섰다는 뉴스는 낯설다.
주말이다. 케이크를 손에 들고 아파트 단지를 오가던 사람도, 테라스에서 새벽까지 음악을 틀어놓고 벌이던 파티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난로를 꺼냈다. 남반구인 이곳은 곧 겨울이다. 이제 유럽과 미국이 아니라 중남미가 더 자주 국제 뉴스에 오를 것이다. 내년 2월 방학에 나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갈 수 있을까.
산티아고(칠레)=글·사진 김순배 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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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_11개 나라에서 온 편지
1.방글라 정부는 "돈 줬다"는데 국민은 "못봤다"
2.스페인 봉쇄 풀려..."오, 찬란한 토요일"
3.칠레, 결제 앞서 손소독제 먼저 내민 초밥배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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