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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봉쇄 풀려...“오, 찬란한 토요일”

[코로나 뉴노멀]
2부 1장 11개 나라에서 온 편지 ②스페인
등록 2020-05-30 06:03 수정 2020-06-13 05:30
경계령이 완화된 동네의 작은 공원에는 여전히 인적이 드물다.

경계령이 완화된 동네의 작은 공원에는 여전히 인적이 드물다.

‘같은 바이러스, 다른 대응’. 인간이 거주하는 땅덩어리 대부분은 코로나19에 의해 점령됐다. 하지만 이 사태에 맞서는 각 나라의 대응은 같지 않다.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여기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을 소개한다. 11개 나라에 흩어져 사는 교민들에게 편지를 받았다. 같은 재난에 맞선 각 나라의 다른 대응을 들어본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 3명이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외부자의 눈으로 분석한 글을 보내왔고, 국내 코로나 최고 전문가 5명이 내부자의 시선으로 냉철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좌담을 정리했다_편집자주

스페인 작가 호르헤 셈프룬의 <참으로 아름다운 일요일!>(Quel beau dimanche!)은 작가가 독일 부헨발트 정치범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하루를 담은 글이다. 1944년 12월 어느 차갑도록 청명한 일요일 새벽, 동료 수감자 페르난드 바리존이 반어법인지, 정말 그렇게 다가왔는지 “참 아름다운 일요일”이라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작중 나는 그에게만 허용된 공간을 벗어나 눈 속에 우뚝 선 너도밤나무 한 그루를 넋 놓고 우러러보는데, 등 뒤에서 친위대 장교가 위협적으로 총을 빼든다.

오랜만의 운동, 이틀을 절뚝

셈프룬이 바라본 나무가 그랬을까. 활짝 열어둔 창문으로 나무를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그 나무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기분이, 나무를 한 번 거른 햇살이 남다르다. 3월13일 발효된 뒤 기약 없이 연장되던 국가 경계령이 5월 초 단계별로 완화되기 시작했다. 대인접촉 금지, 대화 금지, 걷다가 멈추는 일도 금지이지만, 사람들이 좁은 반경이나마 걸어다닐 수 있게 허용됐다. 도로 복판에는 자전거가 스쳐 지나가고 좁은 거리에 사람들로 넘쳤다. 거리에 나앉아 확성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여럿이다. 5월 첫 주말에 마드리드에만 1만1천 그룹 넘게 벌금형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자면 가시거리, 가청거리 내 일만은 아니었나보다. 평소에도 하지 않던 운동을 쉬어서인지, 짧은 산책에도 이틀 동안 장딴지와 허벅지가 결려 절룩거렸다.

경계령 기간에는 필수품을 사는 일 외에는 통행이 제한됐다. 3월 초에 방문한 마트의 판매대 위에 듬성듬성 빈 곳이 보였다. 몇몇 우유와 커피는 동났다. 통밀가루가 없어 흰 밀가루로, 단립종이 없어 장립종 쌀을 선택해야 했다. 선택의 폭이 확 줄었지만 품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가격도 변함없었다. 아는 사람 어머니에게서 윗집 사람이 확진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열이 끓던 아이가 나았다는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봉쇄 뒤 몰랐던 것도 알게 됐다. 저녁 8시 의료진을 위해 박수를 치는데, 그 시간에 이전에 몰랐던 이웃 사람과 안부 인사를 나눈다. 식당 판로가 막혀 직판하는 스테이크용 고기를 주문했는데, 식당을 도우려는 사람들의 주문이 넘쳐서 한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들뜬 기분이 가라앉았다.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큰 원을 그리며 비켜간다. 여전히 도로 한복판까지 나온 길고양이들은 ‘이족’ 동물이 신기한지 별일이란 듯 쳐다본다. 인부들이 웃자란 공원의 풀을 깎고 대로의 우거진 나뭇가지를 친다. 쌓인 꽃잎과 낙엽을 청소차가 치운다. 회복기 환자가 차근차근 과거의 습관을 새로 발견하듯 공간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셈프룬은 무얼 하고 있느냐 다그치는 친위대 간수의 위협에 “나무 때문에”라고 대답한다. 총을 거둔 장교는 같이 나무를 묵묵히 올려본다. 그렇게 하루를 또 넘긴 이 인물은 살아남아 20세기 산증인이 됐다. 스페인어 자막이 깔린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더불어 지냈던 ‘봉쇄’ 생활을 마감하는 토요일, 파릇파릇한 잎을 단 채 건기로 다가가는 초여름 나무를 우러러본다.

마드리드(스페인)=글·사진 구소영 <저항의 멜랑콜리>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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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뉴노멀
2부 세 개의 시선

1장_11개 나라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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