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온 지 9개월 만에 서자카르타의 쇼핑몰 푸드코트에 작은 식당을 열었다. 왜 이 적도 남쪽까지 흘러왔으며, 왜 하필 식당인지는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한국 길거리 음식을 콘셉트로 한 이 가게는 제법 반응이 좋았다. 인도네시아 최대 명절인 르바란을 맞아 계산대 앞에 긴 줄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손님은 줄고 직원들 간의 갈등은 심해졌다.
주방팀은 주방장과 그의 아내와 그 아내의 동생, 이렇게 한 가족으로 구성됐다. 모두 자카르타 동남쪽 위성도시인 치카랑의 한식당에서 일하던 순다족이다. 캐셔팀은 쇼핑몰 인근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촌지간, 모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브타위족이다. 나는 한 가족이 상대편 가족을 헐뜯는 불평을 매일 들었다.
9월 어느 날 식당에 가보니 분위기가 특히 안 좋았다. 주방장과 캐셔가 욕설을 섞어가며 싸웠다고 했다. 그날 밤 12시 주방장이 문자를 보냈다. 퇴근 시각에 맞춰 캐셔의 애인과 친구들 약 30명이 쇼핑몰로 몰려와 주방장 가족을 협박했으며, 신변의 위협을 느낀 주방팀 모두 고향인 반둥으로 피신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캐셔들에게 물어보니 얘기가 달랐다. 30명이 아니라 3명이었으며 협박이 아니라 대화를 했다고 한다. 진실은 양편의 중간쯤일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제기됐다. 주방장이 아내가 쉬는 시간을 틈타 자신을 만졌다고 한 캐셔가 주장했다. 그는 주방장이 건드린 자신의 신체 부위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열변을 토했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성추행이다. 주방장이 마음에 드는 캐셔를 지분대다가 사이가 틀어지니 박대했다는 유의 드라마였을까.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주방이 텅 비었는데 주말 영업을 어떻게 하나. 옛 동료인 정인환 기자에게 카톡으로 하소연했더니, 그는 “캐셔의 애인이 주방장을 잡으러 가면 이 아니라 가 되는 거야”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해주었다.
토요일이 왔다. 평생 한 번도 식당 주방에서 일해본 적 없는 나와 아내가 주방 의자에 앉았다. 배식구 너머로 본 푸드코트 풍경은 평온했다. 주말을 즐기러 온 자카르타의 중산층 가족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이들을 유모에게 맡긴 우리 부부는 육수가 부글거리는 가스레인지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식당만은 하지 말라는 교민의 충고를 떠올렸다.
지금 자카르타에선 한식당이 유행이다. 인터넷 교민신문 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에만 자카르타에 한식당이 30~40% 늘었다. 겉만 보면 한류와 한식 사업의 행복한 결합 같다. 그러나 나는 이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카르타의 최저임금은 2년 만에 60%나 올랐다. 임금 상승 압박을 견디지 못한 봉제공장들이 망해가고 있다. 이곳에서 공장을 20년씩 운영해온 한국인 사장들은 아무 기반 없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가장 만만한 새 사업은 무엇일까? 바로 식당이다. 이런 이유로 공장 사장들의 한식당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수요를 반영하지 않은 만큼 망하는 식당도 많다. 생기는 수만큼 망한다. 한국이나 자카르타나 자영업은 ‘위험한 직종’인 것이다. 경험 없이 뛰어들 만한 사업이 아니다.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배식구 너머로 손님들이 하나둘 몰려드는 풍경을 보았다. 역광을 받은 손님들의 실루엣이 내게는 좀비처럼 보였다. “먹이를 줘! 먹이를 달라고!” 주인의 썩어가는 속을 모르는 캐셔 리리가 신나게 소리쳤다. “돌비빔 둘, 떡볶이 하나!”
아내가 앞치마를 두르며 내게 말했다. “여보 파 좀 잘라.” 나는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새 냉장고에서 싱싱한 파를 꺼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유현산 소설가*칼럼 세 남자의 ‘타향의 봄’에서는 기자 출신의 유현산(인도네시아 자카르타·소설가), 김순배(칠레 산티아고·유학생), 김기태(영국 버밍엄·유학생)씨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매주 돌아가며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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