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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아니면 X’ 외에도 있다

보육원 원장이 들려준 뉴질랜드의 공존교육, 모든 과정을 속도에 맞게 배우는 교육
등록 2014-04-26 17:59 수정 2020-05-03 04:27
쌍둥이가 1살반에 진급했다. 아이들의 행동을 ‘배움의 과정’으로 간직하는 어린이집이어서 다행이다.김향청 제공

쌍둥이가 1살반에 진급했다. 아이들의 행동을 ‘배움의 과정’으로 간직하는 어린이집이어서 다행이다.김향청 제공

본 연재 첫 회에 썼던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집 쌍둥이가 1살반(한국 나이 2살)에 진급을 했다. 진급에 앞서 원장 선생님이 전체 부모들 앞에서 1년간의 보육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배울 점이 많았다.

쌍둥이가 다니는 보육원은 계열원이 3개 있다. 그 그룹의 보육에서 참고하는 곳이 뉴질랜드란다. 뉴질랜드에는 마오리족을 비롯한 선주민, 그리고 구미나 사모아 등에서 온 이민자가 있어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물론 각 민족마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크게 다르다. 뉴질랜드는 민족마다 특성에 맞는 어린이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민족의 문화 중에서 좋은 부분을 도입한 형태로 어린이집 교육을 구성한다는 방침이 확립돼 있다. 서로 배우며 사는 것이 뉴질랜드에서의 ‘공존’ 방식인데, 그것이 어린이집 운영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이다.

그 결과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아이들 한명 한명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 무슨 일이든 정답이 ‘○ 아니면 ×’밖에 없는 게 아니라 모든 ‘과정’을 중요시하게 된다.

원장 선생님께서는 그 예로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어느 0살(한국 나이 1살) 아기가 급식으로 나온 채소를 첫째날에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다음날에는 만지고, 며칠 뒤 겨우 입에 넣고 먹었다 한다. 손으로 만지고 있을 때 “이것 먹는 거야” 하고 재촉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채소를 ‘이건 음식이구나’라고 인식하기 위한 ‘배움의 과정’으로 생각해 억지로 먹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을 ‘배움의 과정’으로 간직함으로써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와 개성에 맞게 배우게 된다. 선생님과 부모는 넓은 아량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일본 동해안에 있는 후쿠이현의 교육방식에 대한 보도가 생각났다. 후쿠이현은 매년 진행되는 학력시험에서 늘 1위나 2위를 차지했다. 이곳에서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수업에 토론 형식을 적극 도입해 ‘배우는 힘을 키워주는 교육’이 활발하다고 한다. 즉, ‘○ 아니면 ×’가 아니라 ‘배움의 과정’을 중시한 교육을 도입한 결과 학력도 올라간 것이다.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입시를 염두에 둔 주입식 교육이 문제가 돼 2002년부터 산지식을 가르치는 ‘유토리교육’(여유교육)이 시작됐다. 그런데 아이들의 ‘학력 저하’가 지적돼 2008년에 사실상 폐지됐다.

뉴질랜드의 민족 공존 지혜와 아이들의 학력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이어지면서 이런 이념을 가진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씩 방향은 다르지만 일본에는 이런 깊은 철학을 가지고 보육하는 어린이집이 많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몇십 년 동안 보육원 부족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무자격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 보육과 관련된 사회복지제도가 주목받긴 했지만 아직도 정부는 뚜렷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아이가 평등하게 이 훌륭한 보육복지제도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도쿄=김향청 재일동포 3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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