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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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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당하기 일보 직전

워낙 잘 알려진 모바일 메신저 라인 사기 수법, 이런 데 누가 당하는가 했더니…
등록 2014-08-30 15:04 수정 2020-05-03 04:27
사기꾼도 애국심에 버럭한다. “센카쿠제도는 일본 땅”이라고 중국어로 답을 하니 상대방이 화난 스탬프를 보내왔다. 인터넷 화면 캡처

사기꾼도 애국심에 버럭한다. “센카쿠제도는 일본 땅”이라고 중국어로 답을 하니 상대방이 화난 스탬프를 보내왔다. 인터넷 화면 캡처

일본에서는 모바일 메신저로 카카오톡보다 라인을 쓰는 사람이 많다. 요즘 라인을 이용한 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조금 전에도 친구와 라인으로 대화를 하는 중에 갑자기 로그아웃되었다. 비밀번호를 넣어도 접속이 안 되었다.

사기꾼이 해킹했음을 알아차리고 바로 계정 정지 수속을 하려는데 전화가 계속 울렸다. 라인 주소록에 있는 친구들에게 ‘내’가 “2만엔짜리 웹카드를 4장 사달라”는 메시지를 일제히 보냈다는 것이다.

전화해온 친구들은 이미 뉴스 등을 통해 사기꾼의 수법을 알고 있는 터라 내가 해킹당한 사실을 알려주려고 전화한 것이었다. 내가 지금 계정을 정지시키려던 중이라고 얘기하자 다들 입을 모아 말하는 게 “근데 요즘도 이런 수법에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였다.

라인을 이용한 사기꾼은 친구를 위장해 웹카드를 사달라고 당부한다. 웹카드는 인터넷상에서 온라인 게임이나 음악 다운로드 등 유료 콘텐츠를 이용할 때 쓰는 선불카드다. 사기꾼은 급하다며 내일 돈을 줄 테니 일단 카드에 쓰인 코드를 보내라고 재촉한다. 코드가 있으면 카드 자체는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뉴스가 널리 알려진 것도 있으나 적지 않은 금액의 카드를 사라고 하니 희한하게 생각해 보통은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걸렸다. 혹시나 해서 남편한테 전화를 했는데 이렇게 말한다.

“오, 지금 은행에서 돈을 찾았으니 좀더 기다려. 지금 편의점에 가서 살게.”

집에서 필요한 일이 있는 줄 알고 아무 의문 없이 행동에 옮긴 것이다. 친구 사이면 고액이지만 가족끼리라면 넘어갈 수 있는 금액인 것이다.

그러자 또 걱정이 된 게 아버지였다. 전화를 해보니 웹카드가 뭔지 의미를 몰라서 전화해서 물어보려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사기는 고령자에게는 비교적 효과가 없는 것 같다. 결국 계정도 바로 정지시킬 수 있어 피해자 없이 일은 끝났다.

일본에서 라인 사기가 알려지면서 사기꾼의 접속 지역이 중국이나 대만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IP 주소를 통해 대만의 접속 지점을 알아낸 인터넷 전문가도 있었다. 내 친구 중 중국어를 구사하는 이가 중국어로 말을 걸어보니 바로 중국어로 답장이 왔다고 한다.

사기군의 수법이 알려지면서 일부러 놀리는 사람도 있어 후속담도 많다. 어느 이용자는 사기 메시지에 ‘톈안먼 사건’이라고 문자를 넣으니 사기꾼이 바로 로그아웃했다고 한다. 중국 당국의 감시망에 걸린 것이다.

“센카쿠제도는 일본 땅”이라고 넣으니 화를 내 정체가 밝혀진 사기꾼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걸작’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급하니 좀 도와줘. 편의점에 가서 5만엔짜리 웹카드를 2장 사서 코드를 알려줘.”

“마침 지금 엄마 수술비를 찾아오는 길이니 그걸로 살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아니, 네가 이런 부탁을 한다니 급한 거지?”

“난 네 친구 아니야. 미안하다. 이거 다 거짓이니 그러지 마.”

“ㅋㅋ 나도 거짓말이야.”

“이, 나쁜 놈!”

착한 사기꾼도 있는 것 같다.

도쿄=김향청 재일동포 3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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