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전화로 사건에 대해 연락을 받은 직후 온몸이 계속 떨렸습니다.”
일본의 조총련계 민족학교인 교토조선제1초중급학교에 딸과 아들을 보내는 재일동포 김수환(38)씨는 이렇게 말했다.
‘사건’은 2009년 12월에 벌어졌다. 교토학교 교문 앞에 확성기를 든 남자들이 나타나 큰 소리로 외쳤다.
“김치 냄새 싫어.” “보건소에서 처분해라. 개가 더 낫다.” “조선반도로 돌아가라.”
그들은 우익단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의 멤버였다. 그날 학교에는 약 170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시위는 1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놀란 나머지 울음을 터뜨린 학생도 많았다.
재특회는 교토시에서 관리하는 공립공원을 교토학교가 운동장으로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호소하며 2010년 3월까지 모두 3번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그들이 확성기를 통해 외친 말들은 그런 내용과 상관없는 차별적인 폭언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 “학교 가기가 무섭다”고 호소하거나, 큰 소리가 무섭다며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에도 떠는 등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학생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재특회는 무슨 자랑거리처럼 시위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온라인상에 공개했다. 그 내용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재특회가 내보낸 동영상이었지만 이를 본 사람들은 오히려 재특회에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교토학교 보호자들은 등·하교 시간에 통학길을 순찰하는 등 대책을 취했다. 그러다가 결국 법적인 대응에 나섰다. 2010년 6월, 학교 쪽은 주변 200m 이내 시위 금지 및 3천만엔의 손해배상을 재특회 쪽에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인종차별이며 강한 불법성을 띤다.’
오사카고등재판소는 7월8일 재특회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판결을 내리며 학교 주변 시위 금지와 1200만엔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명했다. 지난해 10월 교토지방재판소의 1심 판결과 결이 같은 내용이다.
지난 몇 년간 재특회는 일본 각지에서 재일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적인 폭언을 터뜨려왔는데, 재특회의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에 대해 ‘인종차별’이라는 사법 판단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인종차별적 말이나 행동에 대해 이만한 금액의 배상을 명령한 것도 처음이다. 이번 재판은 교토학교가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일본에서 앞으로 인종차별을 억지하는 데 효과를 줄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시 교토학교 부속 유치원에 다녔던 김수환씨의 딸은 지금 5학년, 아들은 3학년이 되었다. 김씨는 판결 내용을 듣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뒤 아이들에게 이런 나쁜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일본 사람들과 대립할 것이 아니라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계속 얘기했습니다. 재판 뒤 열린 보고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판결문에는 ‘재특회에 의해 일본에서 재일조선인들이 민족교육을 진행하는 사회적 환경이 손상되었다’고 명기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본 재판소가 조선학교의 민족교육을 인정한 셈이죠. 이 또한 의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의 보고회에서는 사건 당시 초급부 2학년이던 학생이 쓴 편지를 보호자가 참가자들 앞에서 읽었다.
“재특회가 왔을 때 나는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나는 싸우고 싶었다. 지금도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그날이 가끔 생각난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악담을 퍼붓는 어른들의 모습에 놀랐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싸우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다.”
도쿄=김향청 재일동포 3세·자유기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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