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한 번꼴로 그들로부터 전자우편을 받는다. 다음달 일정, 임박한 이벤트, 내일의 기자회견, 오늘밤 토론회, 그리고 영화 상영 안내나 금요일 밤의 ‘재즈 나이트’까지 다양한 소식이 배달된다. 사진전의 오프닝도 금요일 밤 차지다. 대관료는 없고 전시 준비도 알아서 해준다. 국내외 현안이 토론의 도마 위에 시의적절하게 오르고, 인권단체는 물론 유엔과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의 따끈따끈한 보고서도 대부분 이곳에서 발표된다. 밥, 술, 차 모두 착한 가격에 해결할 수 있고 방콕의 여느 카페와 달리 무료 와이파이까지 가능하다. 타이외신기자클럽(FCCT) 얘기다.
나는 이 클럽에 회비를 내는 회원이 아니다. 잦고 길다고 볼 수 있는 방콕 밖 가출 일수를 따져보니 본전을 뽑지 못할 게 분명하다는 찌질한 결론이 나왔다. 회비 내는 회원은 참가비 있는 프로그램에 무료로 입장하고 음료 등을 할인받으며 매년 열리는 임원 선출에 투표권이 있다. 전자우편 수신만 등록해도 프로그램 정보를 받아보고 오프 행사에 발 들여놓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모든 콘텐츠가 개방된 클럽의 사이트엔 “특파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고 ‘쿨’하게 적혀 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서울 나들이를 앞두고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사이트에 접속한 적이 있다. 기본 정보 이외의 것을 보려면 로그인을 하라고, 로그인을 하려니 회원번호를 입력하란다. 관뒀다. 서울은 외신기자클럽마저도 ‘당신들의 대한민국’인가고 짧은 한숨이 나왔다. 흠이 없진 않지만, 기자들의 ‘배타적 이익 도모’에 갇히지 않고 ‘진실’과 ‘액세스’를 위해 분투하는 이들이 교류하는 타이클럽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2008년 5월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옆 나라 버마를 강타했을 때도 가장 분주했던 공간 중 하나는 다름 아닌 타이외신기자클럽이었다. 하룻밤 새 13만여 명이 사망·실종됐건만 구호단체와 취재진을 막기 바빴던 (버마) 군정 덕분에 제한적이나마 구호가 가능했던 유니세프 등이 옆 나라 외신클럽에서 거의 매일 브리핑을 한 게다. 대재난 보도가 클럽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이야 한탄스러웠지만 정보 한 글자에 목말랐던 기자들은 브리핑실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드물게 현장에 접근한 기자들을 초대해 접근 노하우를 나누던 클럽에선 ‘이렇게 취재했다더라’는 물론 ‘이렇게 추방당했다더라’는 뒷담화도 유용하게 떠다녔다.
클럽은 매년 타이 총리를 초대해 저녁상 차려놓고 ‘심문’한다. 즉석 응답이 오가는 선거 직후 외신회견과 달리 미리 받은 질문지를 제비 뽑아 진행한다. 그렇다고 도전적 질문들이 걸러지는 건 아니다. 서울은 대통령 취임 뒤 1년 만에 연 첫 기자회견에서 수첩을 더듬으셨다는데, 방콕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조차 대변인 위라촌 수콘다파티팍 대령을 통해 기자들과 미리 짜지 않은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물론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외신클럽에서였다.
열린 공간이라고 해서 불청객이 없는 건 아니다. 5월 쿠데타 뒤 군부 소환에 불응하던 짜뚜론 차이생 전 교육부 장관이 쿠데타 비판 회견을 자처하며 클럽을 찾은 적이 있다. 이날 짜뚜론 전 장관은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연행당하는 장면을 전세계에 타전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9월2일에는 타이변호사협회 등이 ‘실종된 사법정의’에 대해 회견한 뒤 패널 토론을 이어갈 참이었다. 이 또한 군정이 주최 쪽에 압력을 가해 회견 직전 취소됐고 군인 경찰들이 클럽 주변을 어슬렁거렸다는 후문이다. 2010년 베트남 인권위원회 등이 주관한 행사를 앞두고 참석자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던 타이 당국이 외신클럽에 행사 취소 압력을 넣은 적은 있지만 (일부 무장) 군인들이 클럽 안팎에 몸소 등장한 건 전례 없다.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군정 치하 방콕으로 돌아가는 길, 호기심과 갑갑함 사이를 널뛰는 심경이 불혹 이후 처음 맞는 가을바람 탓만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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