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3일 북한은 을 통해 오는 9월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보낸다고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한국과 일본 언론에서는 ‘미녀 응원단이 다시 한국에 나타날까’ 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선수단보다 응원단에 관심이 쏠리는 북한 관련 보도 특유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육상대회에 남한 땅을 찾은 북한 응원단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아내 리설주가 포함됐던 사실이 훗날 알려진 터라, 북한 응원단에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에 300명 규모의 응원단을 보냈다. 구성원이 미모의 여성들이라서 ‘미녀 응원단’이라 불렸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기쁨조 구성원’이라는 등 여러 억측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도쿄가 아니라 평양의 얘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2002년 11월 나는 일본 주간지 기자 신분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사람이 들어오면 북한에서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 안내를 하게 된다. 일본인인 경우 대외문화연락협회(대문협)라는, 국교가 없는 나라를 담당하는 단체 소속 안내원이 대응하게 된다. 우리 취재단에는 대문협의 직원과 평양외국어대학의 대학원에서 일본어를 전공하는 여학생이 수행했다. 이름은 경희였다. 나이가 비슷했던 경희와 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다. 일본 취재단을 수행할 정도이니 우수한 학생이 뽑혔을 것이다. 경희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일본의 정치·경제·문화에도 밝았다. 생김새도 예쁘장했고 노래도 잘했다. 나는 평양을 방문하기 전에 일본 방송에서 연이어 보도된 미녀 응원단이 떠올라서 물어보았다.
“혹시 아시아경기대회의 응원단으로 인천에 방문한 적은 없나요?”
경희는 자신은 아니지만 대학 동무 중에 응원단에 간 애가 있다며 응원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2002년의 미녀 응원단은 무용수 같은 예술인과 지원(자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해 뽑았다고 한다. 대부분이 음악무용 대학교 학생들이었지만, 평양외국어대학·사범대학·김일성종합대학의 일반과 학생들도 속했다고 한다.
“오디션에는 뭐라 할까, 화장하기 좋아하고 예쁜 옷 입기 좋아하고… 그런 친구들이 자천하는 거지, 내가 왜….” 경희는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자신과 그들은 전혀 다르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 그런 뉘앙스였다. 북한의 여학생이라고 다 응원단에 속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예쁘게 생겼다고 나라에서 동원하는 것도 아니란 점이 의외라고 느껴졌다. 1998년에 겪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호텔 로비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중년 남자가 얘기를 걸어왔다. 일본에서 온 학생이라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다. 전공을 물어보길래 정치경제학이라고 답하니 남자는 말했다. “그 정도로 키가 크면 우리나라에서는 무용수로 키우는데. 여자가 무슨 정치니 경제니…. 그래서 이국땅에서 살면 안 되는 거야. 제 나라에서 제대로 배워야지.” 여자가 무용을 하면 행복하고 정치·경제를 배우면 불행하다는 가치관이 당황스러웠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북한의 ‘여성상’이 전시대적이구나 생각했다.
실제 북한은 ‘미녀 응원단’ 같은 여성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지만 경희와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북한의 여학생들도 당연히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8년에는 평양 시내 대학생들이 모이는 집회도 구경했다. 가장 앞줄에서 ‘열렬한 모습’을 보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뒤쪽에서 나무에 기대 한가하게 서 있거나, 심지어 엉거주춤으로 앉아 담배를 피우는 학생도 있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북한 시민들을 바라보면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로봇처럼 보이지만, 직접 만나면 같은 인간이라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미녀 응원단’이 다시 참가한다면 똑같은 미소로 똑같이 춤추게 하는 것보다 ‘미녀’들의 개성을 과시하도록 하는 게 북한에 오히려 이득이 되지 않을까.
도쿄=김향청 재일동포 3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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