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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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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수급자도 못 되는 더러운 세상

연예인 어머니의 생활보호 부정 수급 논란이 재일조선인 향해

일본인 평균의 4배 추정, 재일동포 수급률은 혜택이 아닌 차별 결과
등록 2012-06-06 17:27 수정 2020-05-03 04:26
일본 교토의 조선인 마을 우토로. 여기도 징용에 끌려간 재일조선인을 강제수용한 곳이었다. 일본의 조선인 ‘게토’에서 가난은 자주 대물림되었다. 류우종 기자

일본 교토의 조선인 마을 우토로. 여기도 징용에 끌려간 재일조선인을 강제수용한 곳이었다. 일본의 조선인 ‘게토’에서 가난은 자주 대물림되었다. 류우종 기자

 2011년 7월, 일본 도쿄의 번화가에서 기묘한 집회가 열렸다. ‘7·9 외국인에 대한 공금 지출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집회’라는 이름이었다. 인터넷에서 확인해보니 히노마루와 욱일승천기를 내걸고 군복 차림에 일장기 머리띠를 두르고 있다. 검은 군복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시커멓게 덧칠한 개조차량에 올라타 귀가 아플 정도로 옛 군가를 틀어대는 우익단체의 시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 집회는 다소 다르다.

 

 ‘배해’를 가장한 ‘배외’ 운동 

 주최 단체는 ‘배해사’(排害社)라는 극우단체다. ‘배해’라는 말을 일본어로 읽으면 ‘하이가이’인데 배외(排外)도 같은 음으로 읽는다. 이들에게 ‘가이’, 즉 ‘외’(外)는 ‘해’(害)와 같다. 즉, 이들에게 외국·외국인을 배제하는 것은 해악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대표는 ‘양이운동’ ‘배외주의’를 주장하는 20대 후반의 청년이다. 그래서인지 일단 젊은 층이 눈에 많이 띈다. 그리고 과거의 우익단체같이 대동아공영권의 ‘향수’를 자극하는 정서적 선전활동보다는 일본 사회의 일상에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생활의 문제를 파고든다. 이들의 주장은 이렇다. ‘외국인에 대한 생활보호수급을 없애라!’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을 중지해라’ ‘일본인을 차별하지 말라!’. 즉, 외국인에 대한 생활보호지원금과 장학금 지급이 일본인에 대한 차별이니 이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경제 불황에 지진, 해일, 원전 사고가 겹쳤으니 일본 사회가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위기감이 기존의 인종주의나 외국인혐오증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유럽 등지에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데모는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물론 가볍게 지나칠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돌발적인 ‘일회성’ 사건만을 가지고 일본 사회가 이렇다 저렇다는 근거로 삼고 싶지는 않다. 다만 ‘외국인’ ‘생활보호’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남아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런데 지난 4월 이 집회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주로 황실이나 연예 관련 뉴스를 다루는 소학관 발행의 (4월26일호)이라는 주간지가 ‘어머니가 생활보호! 연수입 5천만엔을 버는 인기 연예인의 어이없는 변명’을 보도하면서부터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간단하다. 한 해 5천만엔 이상을 버는 유명 연예인의 어머니가 생활보호금을 지원받는 게 가당치 않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유명 연예인의 ‘신상털기’가 인터넷에서 시작됐고, 곧 ‘차장과장’(지초가초)이라는 인기 개그 콤비 중 한 사람인 고모토 준이치가 당사자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고모토에 대한 공격이 인터넷을 뒤덮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민당의 가타야마 사쓰키 참의원은 5월2일 ‘생활보호 부정 수급 의혹’에 대한 조사를 후생성의 담당자에게 의뢰했고, 이때부터 ‘부정 수급 의혹’을 둘러싼 소동이 정치적 문제로 확대됐다. 상업주의적 주간지와 인터넷의 ‘구석’에 머물러 있던 일이 공적인 언설권에 올라 사회적 이목을 끌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 AKB48의 멤버 중 두 사람의 가족이 생활보호대상자였다는 사실을 이 최근 폭로해 생활보호법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양극화 문제 가리는 희생양 정치 

 일본의 생활보호제도는 헌법이념과 생활보호법(1950년 제정)에 근거해 생활이 어려운 ‘국민’에게 최저한도의 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의 근거를 마련해주려고 도입됐다. 생활보호법은 아동복지법(1947년), 신체장애자복지법(1949년), 지적장애자복지법(1960년), 노인복지법(1963년), 모자 및 과부 복지법(1964년)과 함께 6개 사회복지 관련법 중 하나다. 초기에 200만 명을 웃돌던 생활보호수급자 수는 경제성장과 함께 줄어들어 1995년에 88만 명까지 떨어졌지만 그 뒤 반등해 1999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200만 명을 돌파했다. 계속되는 불황과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 사회가 자랑하던 ‘중산층 신화’는 이미 무너졌고 양극화가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단계까지 와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수급자 수가 늘어나니 예산 부담도 늘어난다. 2001년 2조엔에서 2009년에는 3조엔을 넘어섰고 2011년에는 3조4천억엔(예산 기준)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악의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일본이다 보니 생활보호수급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 연예인의 생활보호금 ‘부정 수령 의혹’이 터져나와 사회적 이목을 끌게 된 배경에 이런 양극화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물론 생활보호수급자 중에는 부정 수급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도덕적 해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생활보호 지급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0.3%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4%에 한참 못 미친다. 따라서 이들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공격은 재정 부담이나 도덕적 해이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다. 권력이나 자본으로 향해야 할 공격의 화살을 엉뚱하게 중간층에 겨누는 현상을 필자는 이 연재물에서 ‘가학적 쾌락’ ‘끌어내리기 민주주의’ ‘증오의 정치’로 소개한 바 있는데, 이들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공격도 이런 범주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모토의 ‘부정 수급 의혹’이 인터넷에서 퍼져나가면서 고모토가 조선인이라는 ‘폭로’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고모토의 연관검색어는 북조선, 한국, 본명, 생활보호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이런 등식에는 두 가지 논리가 존재한다. 일본인이라면 이런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런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인종’은 조선인밖에 없다는 논리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사회당 대표였던 도이 다카코나 북-일 관계 개선을 주장한 고급 관료도 조선인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물론 사실 무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모토 ‘부정 수급 의혹’을 정치 쟁점화한 가타야마 참의원은 우파 잡지 <will> 2012년 6월호에 ‘생활보호(제도)가 재일(조선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글을 실었다. 논지는 간단하다. 헌법과 생활보호법은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니 외국인은 생활보호 수급 자격이 없고, 이들 외국인에게 지급되는 약 1200억엔은 이지스함 한 척을 살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이라는 것이다.
 
 오키나와인, 아이누인은 그래도 일본인? 
 결국 고모토 모친의 생활보호 ‘부정 수급 의혹’ 문제가 다다른 곳은 재일조선인이었다. 지난해 7월9일 열린 우파 집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생활보호 지급을 없애라!’라는 구호가 나왔다는 것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다. 이때는 거의 사회적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고모토 ‘부정 사건’이라는 경로를 통해 재일조선인 생활보호 수급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2010년 생활보호수급자는 208만 명이고, 이 중 재일 외국인은 약 7만 명으로 전체의 3.52%다. 이 가운데 재일조선인 수급자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주 외국인의 약 70%가 재일조선인임을 고려하면 외국인 생활보호수급자 7만 명 중 5만 명 정도로 추산해볼 수 있다. 재일조선인 인구를 약 60만 명으로 잡으면 약 8% 정도가 생활보호수급자인 셈이다. 일본 거주 인구 전체 중 생활보호수급자의 비율은 2%에 못 미친다. 그래서 각종 폭로 기사에는 생활보호 지원을 받는 사람 중 일본인은 약 2%밖에 안 되는데 조선인 등 외국인은 그 4배에 이르니 조선인 등에게 생활보호제도 적용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주장이 쉽게 등장한다. 하지만 생활보호 비율이 높은 것은 그만큼 못사는 사람이 많고 사회적 차별에 노출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키나와의 생활보호 비율이 주요 대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홋카이도의 아이누 사람들의 생활보호 비율이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돗토리현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피차별부락민(한국에서 말하는 백정 계급에 해당됨)의 생활보호 비율은 세대 수 기준으로 전국 평균의 3.3배에 달한다. 따라서 재일조선인·오키나와인·아이누인·피차별부락민의 생활보호 비율이 높다는 것은 이들의 ‘특권’이기는커녕, 오히려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이로 인해 구조화된 빈곤의 방증인 셈이다.
 그런데 오키나와인·아이누인·피차별부락민과 재일조선인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전자는 역사적 경위가 어떻든 간에 일본 국민이다. 그런데 재일조선인은 ‘외국인’이다. 생활보호대상자는 법적으로 ‘국민’, 즉 ‘일본 국적자’에 한정돼 있다. 헌법이나 생활보호법에 ‘국민’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정 때 미국이 만든 초안에 있던 ‘인민’(People)이라는 말을 일본 정부가 ‘국민’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학계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생활보호법도 1946년 제정 때는 모든 영주자가 대상이었다. 즉, 국적 차별이 없었다. 그런데 1950년 개정 때 국적 조항이 들어가 재일조선인 등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재일조선인 등의 항의 활동이 거세졌는데, 1952년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발생한 반라이초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우베시에는 강제동원 등으로 약 3천 명의 재일조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생활보호수급 대상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시 당국이 이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자 우베 복지사무소와 파출소를 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행정 조처로 연명해온 제도의 위기 
 이런 조선인들의 항의 행동 때문인지는 불확실하지만 1954년 후생성 사회국장이 내린 ‘정당한 이유로 일본 내에 거주하는 외국적자에 대해서도 생활보호법을 준용한다’는 통지에 따라 외국인 영주자 등에게도 생활보호비를 지급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조선인 등의 외국적자에 대해서는 일종의 행정 조처로 생활보호비를 지급하게 된 것이다. 물론 재일조선인에 대한 생활보호비 지급 중지가 바로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 근거 없이 행정 조처로 ‘연명’해오던 이 제도 운용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런 변화가 현실화될 경우, 재일조선인의 일상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할 일이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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