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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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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동아시아, 가까운 미국

일본 민주당 집권 2년을 돌아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전격 참가 등 미국 중심의 경제·군사 네트워크에 적극 동조해
등록 2011-07-21 19:19 수정 2020-05-03 04:26

일본 민주당 정권의 ‘좌충우돌’을 보고 있자니 2009년의 ‘사상 최초의 정권 교체’라는 말이 무색하다. 당시 정권 교체에 거는 안팎의 기대는 작지 않았다. 기대는 두 가지로 모아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래 악화 일로에 있던 이웃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과, 신자유주의 정책과 이에 따른 양극화에 제동을 걸고 디플레이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자민당보다 미국에 더 순종적인

지난 2년 동안을 되돌아보면 기대는 배반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경제는 여전히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져 있고, 이웃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많은 기대를 모은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머릿속 꽃밭’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단명으로 끝났다. 이어서 등장한 간 나오토 내각은 하토야마 노선에 대한 반동 때문인지 훨씬 더 노골적이다. 안으로는 법인세 감세와 소비세 인상 방침을 밝히는가 하면, 밖으로는 중국·러시아와의 정치적 마찰을 격화하고 자민당 이상으로 미국에 순종적이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국외 이전 문제는 이미 물 건너간 듯하다. 자민당과 도대체 뭐가 다르냐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그래서 “자민당보다 더 자민당스러운 민주당”, 혹은 “고이즈미보다 더 고이즈미스러운 간 나오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이즈미 자민당이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을 실천에 옮기는 간 나오토 민주당”이라는 소리마저 들린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 참가 문제다.

TPP는 원래 브루나이·칠레·뉴질랜드·싱가포르 4개국이 참가한 자유무역협정(FTA)으로 2006년 5월 발효됐다. ‘소국’ 중심의 경제협정이 세상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미국이 2008년 3월 참가 의사를 표명하면서부터다. 미국은 주로 상품 무역 중심의 4개국 협정에 금융 및 투자 분야의 자유화를 더했고, 이후 오스트레일리아·페루·베트남·말레이시아가 참가해 9개국이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관계국의 협의에 따라 관세 등에 일부 예외 조항을 인정하는 2개국 협정인 FTA와 달리 TPP는 복수 국가들이 참여하는 100% 자유화 협정이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농업 등에 대한 관세 예외도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의 의향에 따라 금융 및 투자 자유화가 포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가장 급진적인 경제통합 협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앞둔 2010년 10월1일, 간 나오토 총리는 ‘갑자기’ 일본이 TPP에 참가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여기서 ‘갑자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누구도 이 발언을 예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TPP가 당시 일본에서는 완전히 생소한 용어였기 때문이다. 간 총리는 TPP 참가를 개항, 패전에 이은 ‘제3의 개국’이라고까지 치켜세운다. 미국의 페리가 ‘쇄국’ 일본의 문을 강제로 열려고 일본 앞바다에 나타난 것은 1853년이다. 그로부터 15년 뒤에 메이지유신이 일어났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 선언을 한 것은 1945년 8월이고, 그로부터 7년 뒤 일본의 전후 번영이 시작됐다. 모두 미국과의 ‘인연’이다. 간 나오토는 TPP 참가를 통해 ‘폐쇄적인 일본’의 문을 열고 정치적 변화를 추동해 일본을 다시 번영으로 이끌어가겠다고 한다. 일본의 현재 상황이 에도 말기나 패전 직후와 같이 고립된 쇄국 상태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TPP 참가는 틀림없이 일본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2011년 2월5일치)가 간 나오토의 TPP 참가를 “가장 대담한 개혁”이라고 평가한 것도 TPP의 폭발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 FTA의 변형 확대판

간 나오토의 ‘깜짝쇼’에 일본 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인 듯하다. 을 비롯해 거대 신문사들도 우호적인 기사를 실었고, 재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의 뜻을 표했다. 심지어 조합원 수 700만여 명을 자랑하는 일본 최대의 노동조합조직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도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공개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치는 것은 예상대로 농업단체다. 물론 지방자치단체 의회나 일부 업계 단체에서 반대론이 불거졌지만, 이런 반대론이 TPP 추진론자들의 ‘대세’를 뒤엎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 노골적으로 미국 친화적인 일본 민주당의 태도로 볼 때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이미 물 건너간 듯하다. 2009년 11월 미군기지가 있는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에서 주민들이 미군기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 AFP

» 노골적으로 미국 친화적인 일본 민주당의 태도로 볼 때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이미 물 건너간 듯하다. 2009년 11월 미군기지가 있는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에서 주민들이 미군기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 AFP

일본 사회가 TPP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1990년대 이래 장기간의 불황(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는 일본 경제에 아마도 TPP가 경기회복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TPP가 일본 경제에 기폭제가 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TPP 논의에 참여하는 나라는 일본을 포함해 모두 10개국이다. 10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미국이 67%, 일본은 24%, 오스트레일리아가 4%, 다른 7개국이 5%다. 미국과 일본을 합치면 91%에 달한다. TPP는 실질적으로는 미-일 FTA의 변형 확대판인 셈이다. 오바마 정권은 TPP 참가를 통해 수출과 고용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7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액은 미국 총무역의 4.2%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미국의 처지에서는 일본이 참가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는 셈이다. 일본 처지에서 보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7개국의 경제규모는 매우 작다. 게다가 일본은 TPP 참가국 중 이미 싱가포르·칠레·브루나이·말레이시아와 FTA 등을 맺고 있으니 TPP 참가로 얻어지는 수출 증대 효과는 거의 없다. 대미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수출 증대와 고용 확대를 꾀하려고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를 고집하는 미국의 태도를 보면 이 또한 기대난망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본 자동차의 70% 가까이가 이미 현지에서 생산되는 것을 고려하면 일본 자동차의 대미 수출 증가도 그다지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금융·보험·의료 등 미국 서비스산업 등이 일본 시장에 들어올 것이고,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베트남 등의 농산품이 일본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즉, 일본의 경제적 이점이 그다지 크다고 볼 수 없다.

미국 주도 중국 포위 군사 네트워크 지향

따라서 일본의 TPP 참여는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TPP 참가는 하토야마, 혹은 민주당 정권의 ‘공약’ 사항인 아시아 중시, 즉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과 모순되는 점이 적잖다. 이미 아시아에는 다양한 지역 통합 논의가 있다. 중국이 주로 주장하는 ‘아세안+3(한국·중국·일본)’이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한 반격으로 주로 일본이 주장하는 ‘아세안+6(아세안+3에 인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이 있다. 이 연장선상에 민주당의 공약이기도 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있었다. 이런 아시아 지역 통합 논의에는 미국이 빠져 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14일 도쿄에서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국가’인데 하토야마 당시 총리가 주창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서 미국이 협조를 요청받은 점이 없었음을 밝히고 불만을 드러냈다. 물론 하토야마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 미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님을 밝혔지만,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불편한 대립’을 계속하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민주당 정권의 아시아 중시가 결과적으로 미국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일본의 TPP 참여는 민주당 정권의 상대적인 ‘아시아 중시’ 노선이 고이즈미 정권 이상의 대미 의존적 통상외교로 전환했음을 안팎에 선언하는 셈이 되었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TPP가 중국 포위망의 군사적 구축이라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TPP 같은 지역경제 협정이 반드시 군사동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경제협정이나 통상조약에 군사동맹 조항이 들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브루나이·칠레·뉴질랜드가 맺었던 2006년 TPP 협정에도 TPP를 근거로 특정 참가국이 다른 참가국을 규합해서 군사행동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미국·멕시코·캐나다가 맺은 북미자유협정(NAFTA)에도 마찬가지의 조항의 들어 있다. 따라서 이라크전쟁 때 미국과 NAFTA를 맺은 캐나다가 미국의 파병 요청을 거절할 수 있던 것도 경제협정이 반드시 군사동맹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령 10개국의 TPP가 실제로 발효됐더라도 미국이 일으키는 군사행동에 TPP 참가국이 미국에 군사적으로 협조해야 할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 중심의 TPP 구도에 일본이 참가했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중국을 포위해 고립시키는 대규모 군사동맹 체제의 밑그림이 그려졌다고는 할 수 없다. 즉, 경제통합과 군사동맹이 분리된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통합의 진행이 군사협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전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군사적 이해관계와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와 군사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일본 내 TPP 추진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TPP를 중국 부상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명무실화된 무기수출 3원칙

간 나오토가 TPP 참가 의사를 표명한 지 열흘이 지난 2010년 10월10일,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청 장관은 갑자기 ‘무기수출 3원칙’을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무기수출 3원칙이란 공산권 지역, 유엔 결의로 무기 수출이 금지된 지역, 국제분쟁의 당사국 또는 국제분쟁의 가능성이 있는 나라에는 무기 수출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1967년 당시 총리 사토 에이사쿠가 천명했고, 이후 몇 번 수정됐다. 헌법 9조, 비핵 3원칙과 아울러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를 대표하는 제도다. 하지만 미군에 제공되는 무기는 예외로 하는 등 이미 유명무실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기타자와 방위청 장관에게 미-일이 공동 개발 중인 요격미사일 SM3블록2A의 3국 수출을 위해 무기수출 3원칙의 수정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무기수출 3원칙 수정과 TPP 참가를 이어서 생각해보면, 아시아의 무기시장을 장악하려는 미국에 일본이 적극 동조하는 군사적 네트워크의 구도가 떠오른다.

성공회대 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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