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카밤바에 도착한 것은 선거일 밤이었다. 원한다면 16살부터 투표할 수 있는 에콰도르에서 아직 앳된 청소년들이 그들의 첫 번째 투표를 기념하듯 술판을 벌였고, 걸어서 10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남미에서는 비교적 짧은) 10시간의 버스 이동으로 지친 우리는 텐트 칠 만한 곳을 찾아나섰다. 동네 사람들이 이곳저곳 알려줬지만 모두 강가의 자갈밭이었다. 그나마 학교 옆 농구대가 있는 공터가 평평해서 그곳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보니 아이들이 텐트 주위에 모여서 웃고 있었다.
우리는 활기차게 그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텐트를 접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이번에는 수십 명의 전교생이 창문으로 우리의 동작 하나하나를 주시했다. 농구를 하지 못해 화내는 아이들은 없었다. 어쩌면 이 아침 우리 같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을지 모르겠다. 가방을 챙기고 아침 식사를 하러 동네 슈퍼에 갔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서 지내는지 물었다. 학교 옆 공터라고 하자 그들의 친구인 라파엘 아저씨를 소개해주었다. 그에게는 과수원 옆에 창고로 쓰는 빈집이 하나 있었다. 전기도 가스도 없는 이 집은 그에겐 그냥 창고였지만 우리에게는 최고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이틀 동안의 공터 캠핑을 접고 ‘투미아누마’(외우는 데 며칠이 걸렸다) 마을로 향했다.
투미아누마의 빈집에서 지와 다리오는 부족함 없는 생활을 누렸다. 옥수수알을 떼고 있는 다리오.지와 다리오 제공
라파엘 아저씨의 빨간색 도요타 트럭을 타고 반쯤 부서진 철교까지 가서 오솔길을 10분 정도 걸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훌륭한 집이 나왔다. 방 안에 20년은 족히 됐을 법한 엉성한 철제 침대와 더러운 매트리스가 있었다. ‘청결’과는 거리가 멀지만 동네 사람들이 준비해준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특별했다. 그 방의 주인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초록색 눈을 가진 금발의 고양이와 낳은 지 일주일도 안 됐는지 눈을 떼지 못하는 새끼 3마리도 있었다. 불 때는 아궁이가 있는 작은 주방은 청소 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집으로 통하는 오솔길을 5분 걸어 내려가면 라파엘 아저씨 가족의 자랑인 널따란 피망 밭과 과수원이 나왔다. 과수원에는 오렌지, 감귤, 레몬, 바나나, 과바, 파파야, 아보카도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바질과 오레가노, 레몬그라스 등이 잡초처럼 무성했고 잘 살피면 호박이나 감자, 옥수수와 콩도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아직 철이 아니었다. 그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한 것은 빨간 열매를 맺은 커피나무였다. 나는 곧바로 커피 열매를 수확한 뒤 창고에서 찾아낸 넓은 소가죽 위에 널어 햇볕에 말렸다.
이 낙원은 라파엘 아저씨의 가족과 그의 삼형제, 사촌들까지 먹일 수 있었지만 모두 자기 밭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과일과 채소가 반 이상 땅에 그대로 떨어졌다. 그들은 절대 바닥에 있는 것을 먹지 않았는데 이유인즉, 떨어진 열매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떨어진 열매는 벌레가 먹거나, 그냥 그 자리에서 썩으면 더 좋은 흙을 만드는 거름이 된다.
첫날 우리는 이곳 ‘식구’들과 개인 면담을 했다. 고양이는 다 자란 새끼까지 합쳐서 7마리였고, 엄마 고양이 외에는 우리에게 좀처럼 오지 않았다. 또 자기 공간에 대한 인식이 아주 강해 조금만 다가가도 있는 대로 화내는 거위가 4마리, 특별한 캐릭터 없는 닭 2마리, 젖은 흙 먹는 것을 좋아하는 당나귀와 잘생겼지만 마음을 열지 않는 말 1마리까지 대식구였다. 우리 임무는 이 가족들을 돌보고 빈집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장이 서기 전까지 5일 동안 우리는 사람들이 가져다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다정한 마을 사람들은 밭일을 갔다 오면서 우리 집을 지날 때 토마토나 양상추 등을 집 앞 탁자에 놓고 갔다. 특히 조세피나 아줌마는 올 때마다 한 주먹의 쌀이나 달걀 등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간간이 동네 사람들의 밭일을 도우며 감사함을 전했다. 우리가 가진 건 전기도 안 들어오는 빈집과 하루 세 끼 검소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풍족했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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