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레 축제(아마존강 돌고래의 사랑의 재회를 축하하는 전통 축제) 기간에 조용히 캠핑할 곳을 찾다가 하르딩 데 가이아(Jardin De Gaia)로 갔다. 마을에서 30분 동안 땡볕을 받으며 걸어 도착한 이곳은 정글 속 작은 파라다이스였다. 프랑스 아저씨 카를로스와 뇨넬은 이곳의 작은 정글 땅을 빌려 채소와 허브 정원을 만들었다. 집도 직접 짓고, 유기농 화장실도 만들고, 빗물을 모아 식수로 사용하고 샤워도 할 수 있게 했다. ‘가이아’는 자연의 여신 이름이고, 한국말로 ‘가이아의 정원’이라는 뜻의 이곳은 이름만큼 모든 것이 완벽했다. 뇨넬이 프랑스에 잠깐 돌아간 사이 프랑스에서 온 자칭 ‘아나키스트’ 베네는 이곳에 자리잡고 우리를 초대했다.
베네는 내게 창조적인 에너지를 주는 친구였다. 그녀는 서아프리카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에서 브라질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왔다. 80살 뉴질랜드 선장과 두 달 걸려 대서양도 건넜다. 아마존에서 만난 그녀와 나는 바로 절친이 되었다. 우리는 곧잘 길거리를 쏘다니며 쓰레기를 뒤졌고 그 속에서 보물도 찾아냈다. 사이레 축제가 끝나고 남은 조형물을 뜯어오거나 누군가가 버린 옷감을 주워와 옷을 만들기도 했다. 간혹 주워오는 것들에 그림을 그려서 쓰레기가 아닌 예술창작품(?)으로 둔갑시켰다. 하루는 길거리에서 빨갛게 녹이 슨 철판을 주워와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내 모습을 철판에 그렸고, 나는 한글로 ‘누구나 길에서 일한다. 먹는다. 배운다’라는 글귀를 적어넣었다. 예술가 베네는 한글이 너무나 아름답다며 자신이 쓴 말도 안 되는 프랑스어 시를 이른바 ‘포르투뇰’(포루투갈어+스페인어)로 번역해주며 한글로 써달라고 했다. 그녀가 본 한글은 아마도 아주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선의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남미에 오기 전 2년간 프랑스 남부에 있는 스쾃하우스(Squat House)에서 생활했다. 스쾃하우스는 히피, 펑크, 아나키스트 등 사회제도에 속하기를 원치 않는 온갖 이름의 젊은이들이 빈집을 점거해서 사는 주거지인데, 함께 예술과 문화적 소통을 하며 공짜로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불법이기에 찾기가 쉽지 않고 소개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비밀 소굴 같은 곳이다. 필자들 역시 런던에서 스쾃하우스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곳은 돈 없이 여행하는 우리에게 더러운 공짜 안식처이자 이상을 나누는 공동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마존에서 숙명처럼 모인 나와 다리오, 베네의 동거가 시작됐다. 나중에는 루시아노가 가이아의 정원에 합류했다. 그는 상파울루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인재였지만, 현재는 자신이 만든 장신구를 팔아서 근근이 살아가는 히피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나무 위에 작은 원숭이들이 있었다. 루시아노는 일어나자마자 정원에 물을 주고, 다리오는 불을 지펴 커피를 끓이고, 베네와 나는 인도식 밀가루빵 ‘차파티’를 만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임무가 정해져 있었다. 루시아노는 아주 과묵했다. 반면 베네는 언제나 흥분하며 정치적 논쟁을 벌이기 좋아했다. 이 스물두 살의 혈기왕성한 아나키스트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양 떠들었다. 자신이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프랑스와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다가, 금세 프랑스의 음식과 전통에 대한 칭찬에 열을 올리며 자신이 프랑스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녀는 프랑스인이 확실했다.
유난히 더워서 숲 속에 하루 종일 숨어 있던 어느 날, 우리는 먹을거리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하르딩 데 가이아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망고나무가 있었는데, 아직 익지 않은 푸른 열매들만 달려 있었다. 우리는 그 망고를 따서 요리를 하기로 했다. 먼저 깍둑썰기를 하고, 양파와 마늘을 넣어 볶다가 물을 붓고, 한 주먹 남은 소야프로틴(대두로 만든 채식주의자용 고기)과 정원에서 잘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여러 향기 좋은 허브를 넣고, 마지막으로 달걀탕처럼 달걀 하나를 깨뜨려 넣었다. 이렇게 하르딩 데 가이아표 ‘그린망고수프’가 탄생했다. 익지 않은 망고는 얼추 감자 같은 맛을 내면서도 과일 특유의 향이 있었다. 우리는 요리 하나를 할 때도 서로의 상상력에 의지했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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