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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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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 잔혹사 두 주역 “우린 억울해”


숲의 저승사자 유칼리와 온실가스 주범 기름야자 “총감독은 인간”
등록 2009-02-05 15:45 수정 2020-05-03 04:25

기름야자와 유칼립투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름야자 열매로 팜유(Palm Oil)를 만든다. 유칼립투스는 귀여운 코알라의 주식이다. 이 정도?
가늘게 찢어진 잎이 축축 늘어진 야자수를 생각하면 열대의 바다가 떠오른다. 유칼립투스를 생각하면 그 줄기에 매달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귀여운 코알라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아~ 아름다운 발리. 아… 햇살 뜨거운 골드코스트.
오케이, 거기까지. 이제 그 상상을 모두 뒤집는 기름야자와 유칼립투스의 말싸움이 시작된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열대우림 잔혹사.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에서 일꾼들이 열대우림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있다. 전세계 열대우림의 10%를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름야자 플랜테이션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열대우림을 개발해왔다. 개발은 파괴의 다른 이름이다. REUTERS/ HARDI BANKTIANTORO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에서 일꾼들이 열대우림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있다. 전세계 열대우림의 10%를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름야자 플랜테이션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열대우림을 개발해왔다. 개발은 파괴의 다른 이름이다. REUTERS/ HARDI BANKTIANTORO

유칼립투스(이하 유칼리): 안녕하세요. 저는 유칼립투스입니다. 쟤는 기름야자이고요. 제 고향은 오스트레일리아이고, 기름야자의 고향은 북아프리카지요. 근데 지금 저희가 주로 살고 있는 곳은 타이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예요. 사람들이 ‘지구의 허파’라고 부르는 아마존의 밀림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요. 사람들이 열대우림을 불태우고 그 자리에 우리를 심었죠. 사람들 말로는 플랜테이션 농장이라고 하더군요.

식물성 팜유 안 쓰이는 곳 없어

우리는 정말 자라는 속도가 빨라요. 고향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비를 보기가 힘들어요. 비가 오면 최대한 빨리 물을 빨아들이고 쑥쑥 자라지요. 덕분에 물 많고 더운 동남아에서는 1년에 10m 정도는 금방 자라지요. 4~5년만 키우면 경제성이 있다고 하더군요. 다른 열대우림 나무들은 그 정도 크는 데 30~40년은 걸리는데 말이죠. 우리는 생명력이 강해서 밑동만 남아 있으면 다시 자라죠. 4번을 잘라도 다시 살아나요. 20년 키우면 4~5번을 잘라 쓸 수 있는 셈이죠. 그 이후는 자라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불을 질러서 태워버리더군요. 잔인한 인간들. 사람들은 우리 몸뚱아리로 종이를 만들지요. 종이의 원료인 펄프는 한대림으로 만들고, 열대림은 목재로 쓴다는 말은 오랜 옛날 상식이에요. 1980년 타이에서 처음 조림에 성공한 뒤, 우리는 최고의 종이 원료로 쓰이고 있죠. 한국 기업들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우리를 키우고 있어요.

(인도네시아의 한국계 기업인 코린도그룹은 인도네시아 동부 및 중부 칼리만탄에 1994년부터 유칼립투스와 아카시아를 키우는 조림사업을 진행 중이다. 코린도그룹은 지난 2007년까지 모두 6만2천ha에 유칼립투스 농장을 만들었고, 21만ha의 부지를 추가로 확보한 상태다. 팜오일 농장은 현재 1만5천ha를 조성했고, 12만ha의 농장 부지를 더 확보해놓았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의 기름야자 농장에서 한 노동자가 야자열매를 따고 있다. REUTERS/ ZAINAL BDB HALIM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의 기름야자 농장에서 한 노동자가 야자열매를 따고 있다. REUTERS/ ZAINAL BDB HALIM

기름야자(이하 팜): 잘난 척은. 제 이야기도 들어보시죠. 팜유 아시죠? 기름야자 열매에서 짠 기름이 팜유예요. 여러분이 마트 진열대에서 보는 상품 10개 중 1개에는 우리 성분이 들어가 있어요. 여러분이 즐겨 먹는 라면 겉봉지를 보세요. 뭐라고 적혀 있나요? 식물성 팜유 사용. 이렇게 되어 있죠? 과자, 아이스크림, 초콜릿부터 식용유, 화장품, 비누, 윤활유까지 우리 기름은 안 쓰이는 곳이 없죠. 요즘에는 바이오디젤로도 주목을 받고 있어요. 2005년에는 식물성 기름으로는 가장 많이 생산되던 콩기름을 누르고 생산량 세계 1위가 됐죠.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1ha에서 3622kg의 기름을 생산해요. 콩(332kg)의 열 배가 넘죠.

(전세계 팜유 생산량은 2006년 기준 1590만t으로 대부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생산된다. 한국이 자체 생산하는 식물성 기름은 연간 수요량의 10%를 조금 넘는다. 한국은 2006년에도 76만t의 식물성 기름을 수입했다. 이 중 팜유는 전체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인도네시아산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매년 서울시 면적의 46배에 해당하는 280만ha의 열대림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진 열대림에는 야자농장과 나무농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지하수까지 빨아들여 녹색 사막화

유칼리: 잠깐. 저도 한마디 해야겠네요. 우리가 아니면 전세계의 종이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을 거예요. 1997년 전세계 종이 수요는 3억t 정도였는데, 지난 2004년 기준으로 3억5천만t을 돌파했고요, 내년에는 4억t에 이를 거라고 하더군요(미국 펄프제지산업기술협회 통계). 종이 1t을 만드는 데 대략 2.56t의 나무가 필요해요. 내년이면 10억t 이상의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겠네요. 이런 수요 때문에 우리를 키우는 농장은 해마다 4500만ha씩 늘어나고 있어요.

(한국의 제지산업은 2006년 생산량 기준 세계 8위다.)

타이 방콕 북부의 크라비 지역에 있는 바이오디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원료로 쓸 기름야자 열매들을 옮기고 있다. 기름야자는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바이오연료다. 유럽의 맑은 공기를 위해 동남아의 열대림이 파괴되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합/ EPA/ NARONG SANGNAK

타이 방콕 북부의 크라비 지역에 있는 바이오디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원료로 쓸 기름야자 열매들을 옮기고 있다. 기름야자는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바이오연료다. 유럽의 맑은 공기를 위해 동남아의 열대림이 파괴되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합/ EPA/ NARONG SANGNAK

팜: 자기 자랑은. 창피한 줄 알아야지. 솔직히 쟤에 대해 할 말이 있어요. 유칼립투스가 자라기 시작하면 숲이 깡그리 망해요. 쟤들 뿌리는 지하 30m까지 파고들거든요. 빗물은 물론 지하수까지 쭉쭉 빨아들이죠. 잎에서 나오는 기름(유칼립투스유)에는 살충 성분과 살초 성분이 있어 주변의 풀은 물론 미생물까지 다 죽여요. 한마디로 ‘죽음의 나무’예요. 오죽하면 유칼립투스를 키우는 숲을 ‘녹색사막’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겠어요? 대형 유칼립투스 농장이 한번 들어서면 주변에서는 어떤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되죠. 물도 토양도 다 말라버리거든요.

(이런 무서움 때문에 북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유칼립투스 농장이 들어서고 있는 타이에서는 1990년대부터 농민들이 조직적인 유칼립투스 농장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라왁주에서는 1999년 농민들이 수천ha의 기름야자와 유칼립투스 플랜테이션 조성 계획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해 2001년 승소하는 기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4년 항소심에서 주민들은 패소했고, 농장을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열대림 파괴가 이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하천과 지하수를 고갈시키는 유칼립투스를 자르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강 연안을 따라 자라던 유칼립투스들을 베어내자, 하천의 유량이 120%나 늘었다고 한다. 인도의 카르나타카주에서도 유칼립투스 농장으로 하천이 말라가자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유칼립투스를 잘랐다. 인도에서도 120% 정도의 유량 증가를 확인했다고 한다. 브라질에서는 2006년 이후 농민과 활동가들이 밤에 대형 제지회사들의 유칼립투스 묘목장을 습격해 묘목을 뿌리뽑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유칼리: 무슨 소리! 쟤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발생 주범이에요. 인도네시아 같은 열대우림에는 피트랜드(Peat Land)가 많아요. 울창한 밀림 한가운데 죽은 나무들과 풀들이 가득히 쌓인 곳이죠. 물이 흥건한 이 피트랜드에 쌓인 나무와 풀들은 쌓여가면서 수천 년을 서서히 썩어가요. 지금의 석탄과 석유가 바로 수만년 전의 피트랜드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기름야자는 그런 피트랜드에서 물을 빼고 말린 지역에서 잘 자라요. 피트랜드의 물을 빼면 몇백 년간 쌓여 있던 유기물들이 한꺼번에 썩으면서 엄청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져요. 인도네시아만 해도 피트랜드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한 해 18억t이 넘는대요. 그게 다 기름야자 때문이에요.

(그린피스가 2007년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세계 열대림의 10%인 9100만ha를 가지고 있다. 그중 2천만ha가 피트랜드다. 인도네시아는 이들 피트랜드의 열대림을 자르고 땅을 말려 2006년까지 150만ha의 야자나무 플랜테이션을 만들었다. 앞으로 300만ha의 피트랜드에 추가로 야자농장을 세우겠다는 것이 인도네시아 정부의 계획이다. 그 덕분에 인도네시아는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 됐다.)

말레이시아 기름야자 플랜테이션의 면적 변화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기름야자 플랜테이션의 면적 변화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유기물 썩으며 엄청난 이산화탄소 발생

팜: 내가 주범이라니! 주범은 사람이잖아!

(유럽연합은 바이오연료 비중을 내년에는 5.75%까지, 2020년까지는 10%로 올릴 계획이다. 유럽 바이오연료의 대부분은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 팜유다. 바이오연료를 쓰면 유럽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어들 것이다. 대신 대가를 동남아시아가 치르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팜유를 바이오디젤로 바꾸는 기술개발에 성공했다는 벤처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유칼리: 나도 억울해. 새끼 묘목들을 뽑는 농민들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화낼 대상은 우리가 아니잖아. 독자 여러분, 과연 누가 나쁜 건가요?

(녹색연합이 2002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은 평생 높이 18m, 지름 22cm의 소나무를 목재로는 150그루, 종이로는 87그루씩 사용한다고 한다. 당신의 나무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




숲 지키려면 재생용지·유채기름 쓰자

우리의 일상에서 열대우림을 보호할 수 있는 첫걸음은 재생용지를 사용하는 길이다. 재생용지는 폐지(재생펄프)를 원료로 만들어진 종이다. 재생펄프를 적게는 20%를 쓴 제품부터 100%를 쓴 제품까지 다양하다. 정부에서 인증하는 우수재활용품 품질인증(GR마크)을 확인하고 산 제품은 믿을 수 있다. 재생용지에 대해서는 ‘복사기나 프린터기에 걸린다’ ‘오히려 더 비싸다’ ‘하얗지 않고 불투명하다’ 등의 편견이 많았다. 이런 문제들은 이미 해결된 지 오래다. 문제는 오프라인에서는 재생용지를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인터넷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장애인들의 생산품을 판매하는 지역별 곰두리 매장에서는 GR마크를 받은 사무용지부터 화장지까지 각종 재생용지 제품을 살 수 있다. A4용지 500매 한 묶음에 1만8600원부터 2만2700원까지 다양하다. 경기도곰두리 누리집(www.gom.or.kr) 등 곰두리 인터넷 쇼핑을 이용해도 된다. 재생용지 전문 제지업체 성림제지의 쇼핑몰(http://sunglimmall.net)에서도 친환경 화장지와 사무용지를 살 수 있다.
두성종이는 미술용이나 그래픽용, 특수사무용으로 쓰이는 친환경 특수용지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폐지뿐만 아니라 왕겨 등 곡물의 껍질과 면화 부산물 등 종전에 버려지던 식물성 섬유질들을 모아 종이로 만드는 ‘에콜로지 페이퍼’를 만든다. 지상낙원(www.paperangel.co.kr)이란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삼원특수지(www.samwonpaper.com)도 비슷한 성격의 전문 친환경 제지업체다.
팜유는 국내에서는 유채기름으로 대신하자는 운동이 활발하다. 한국 토양에서 잘 자라는 유채는 식용유로도, 바이오디젤로도 팜유를 대체할 수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유채를 키우면 봄에 질소비료를 뿌릴 필요가 없다. 유채는 공기 중의 질소 성분을 땅속에 붙잡아두는 대표적 녹비(綠肥) 작물이다. 기름도 얻고 비료 사용도 줄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3.3㎡(1평)에서 대략 1kg의 유채씨를 얻을 수 있는데, 이를 짜면 0.35ℓ의 기름이 나온다. 1ha에서 1천kg이 넘는 기름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팜유의 생산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훨씬 더 큰 가치가 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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