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동치미가 정말 맛있다!
마을을 오가는 길에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매일 지나다니는 그 길목에서 아이들은 계절에 따라 색색으로 변하는 풍경을 보며 재미있는 비유를 쏟아낸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우리 밥상에 오르는 작물 이야기로 이어지고, 계절과 먹을거리에 대한 진지한 대화로 흘러간다. 언제까지 이 길이 아이들에게 새롭고 재미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매일 아름다움을 나누는 게 참 좋다.
올해는 직접 밭에 무언가를 심어보면서 주변 밭에 더 눈이 가게 됐다. 이제는 대충 어떤 작물이 심겼는지 정도는 알아맞힐 만큼 익숙해졌다.
10월이 되면 옥수수·고추·참깨·콩 등의 추수가 대부분 끝나 농사의 휴지기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밭은 부지런히 다듬어지고 눈 깜짝할 새에 또 새로운 작물이 심겨 있다. 봄부터 여름, 초가을까지 열심히 자란 작물을 거둔 뒤, 텃밭 시즌2가 시작된다. 12월 중순까지 배추·무·갓 같은 김장 채소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한 해를 갈무리하는 김장이 끝나면 마을 전체에 느긋한 여유가 감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놀러 온 엄마는 아직 밭에 푸르게 자라고 있는 배추를 보며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서울은 지금 배추가 다 김치가 돼서 냉장고에 들어갔는데, 여기엔 배추가 아직도 자라고 있네!”
“엄마, 남도 지방은 12월에도 바빠!”
그 순간, 우리는 정말 다른 곳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서울에 살 때는 제대로 김장해본 적도 없고 김치를 많이 먹지도 않았다. 엄마가 가끔 몇 포기 보내주는 김치가 전부였다. 그런데 시골로 이사 온 뒤 더 적극적으로 제철 채소를 즐기다보니 김치 소비량이 부쩍 늘었고, 결국 김치를 사 먹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모든 김장 재료를 밭에서 조달할 수는 없어도 ‘나도 김장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려면 한 해 작물 일정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하는데 도무지 개념이 서지 않는다. 초보 농사꾼은 손과 발보다 머리가 더 바쁜 모양이다.
올해는 일년생과 다년생 작물 구분도 제대로 못한 채, 평소 심어보고 싶었던 것을 마구 사다 심었다. 결과는 참사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작물은 열매 몇 개 건지고 끝났거나 아예 실패했다. 기대했던 아티초크와 허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정성스럽게 돌본 것들은 오히려 죽거나 시들고, 대충 심어놓고 잊고 있던 것이 더 잘 자라는 걸 보며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많이 심는 작물은 다 이유가 있구나’ 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일하게 성공이라 부를 만한 건 원치 않게 ‘비닐로 멀칭을 한 고구마’였다. 무려 두 상자나 나왔다. 연말이 되니 욕심내지 말고 기본부터 충실히 하자는 생각이 조용히 스며든다.
얼마 전 앞집 언니가 김장 채소를 수확하며 무 네 알을 건네줬다. 깍두기나 피클을 담글까 고민하다 동치미를 담가보기로 했다. 방법은 물론 유튜브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레시피를 종합해보니 재료도 간단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차저차 만들어 일주일쯤 실온에 두니 톡 쏘는 맛있는 동치미가 완성됐다. 상에 올리기가 무섭게 동치미 그릇이 싹 비워졌다.
신선한 향과 맛이 살아 있는 채소라면 뭘 해도 맛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터! 제철 음식을 탐구하며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김장에 도전해보는 게 나만의 즐거운 숙제가 될 것 같다.
글·사진 이지은 패브릭·그래픽 스튜디오 달리오로로 대표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세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https://h21.hani.co.kr/arti/SERIES/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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