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해남 출신 친구가 보내준 고구마. 원래 남들에게 파는 고구마는 아니더라는 설명이 고구마보다 더 달게 느껴졌다.
음식 잘하는 어머님들에겐 웬만하면 그때 보내주신 뭐가 참 맛있었다고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 어느 아침에 10㎏, 20㎏짜리 택배 상자가 도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택배 받을 계획이 전혀 없는 어떤 날, 두어 번의 노크와 함께 현관문 앞 바닥에 육중한 뭔가가 내려지는 소리가 들리면 직감한다. 그저께 김치가 참 맛있었다고 답례 인사를 드린 대가가 문 앞에 있다는 사실을. 그런 택배는 완충재마저 음식으로 돼 있다. 다시 먹긴 모호한 반찬들이 차지한 냉장고 한 칸을 이 김에 정리해서 김치가 들어갈 자리를 확보하고, 찬장 꼭대기로 올라가 비일상적 크기의 보관 용기를 여러 개 꺼낸다. 김치를 소분해 담고, 뚜껑을 닫기 전 작은 배춧잎 하나를 잘라 맛보면 햐, 역시나 감탄이 나오는 맛인데, 내게는 그 한 입으로도 충분해서 곧 산에 오를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해진다. 김치냉장고가 따로 없는 집에 그 정도 분량의 김치가 들어왔다면 진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집에서 밥 먹을 계획. 당분간은 외식도 배달 음식도 금지, 우선은 급히 라면을 끓여서 김치 한 접시를 곁들여 해치우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다음엔 찌개를 한 번 끓이고, 그다음엔….
하지만 어떻게 끼니 계획을 일상의 제일 우선순위에 놓는단 말인가? 일도 해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시공간에도 참여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에 치가 떨려 접시 부딪는 소리마저 피하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인데. 그렇게 잘 만든 김치에 하얗게 골마지가 끼고, 내 손으로 소분했던 김치를 그 형태 그대로 꺼내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집어넣던 어느 날에는 싱크대에서 비죽비죽 울었다. 그 무게와 냄새가 버거워서.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밥하는 수고와 밥 먹는 수고를 오늘 얼마큼 들일지를 타인이 정해줬다는 느낌이 유독 부대껴서. 잘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내 냉장고의 깜냥과 기질에 맞게 잘해주시는 방법은 없었을지 원망스러워서. 보내준 사람이 알게 되면 서로 너무 서운해지고 말 마음 풍경이라 그냥 이렇게 다짐하는 수밖에 없다. 다음번엔 절대로 맛있었다고 말하지 않으리라.
얼마 전에는 민망하게도 그런 원칙을 깨게 하는 고구마를 먹었다. 전남 해남 출신 친구가 보내준 고구마인데, 조심스럽지만 인생에서 먹어본 고구마를 통틀어 최고였다. 고구마는 맛있는 작물이지만 상상 속 고구마 맛에 미치는 현실 고구마를 찾기는 어렵다. 반절 정도는 다이어트하는 기분으로 먹게 된다. 그런데 해남에서 온 그 상자에 담긴 어느 고구마를 쪄서 먹어보든 살이 빠지는 기분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구워서 단맛을 끌어올릴 필요도 없었다. 5㎏의 고구마를 보내며 친구는 굉장히 미안해했다. 혼자 자취해본 입장에서 5㎏도 많다는 걸 자기도 잘 알며, 그마저도 엄마와의 실랑이 끝에 최소화한 양이라는 것이다. 지인의 농가에서 요즘엔 잘 보이지 않는 옛날식 물고구마 품종을 재배하길래 반가워서 넉넉히 사뒀다고, 원래 남들에게 파는 고구마는 아니더라는 설명이 고구마보다 더 달게 느껴졌다.
서울에 있는 내 집으로 배달된 그 고구마를 강원도 평창의 엄마 집에 가져와서 엄마와 나눠 먹고 김치를 준 이웃에게 답례로도 보냈다. 웃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고구마를 웃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총각김치와 곁들여 먹다가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 고구마,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로 맛있었다고, 혹시 그 고구마를 내가 또 살 수 있겠느냐고. 꼭 내 돈으로 사서 먹고 싶으니, 혹여나 네가 사서 보내도 안 되고, 어머님이 사서 보내셔도 안 된다고. 친구는 그렇게 할 테니 이번 고구마는 아무와도 나누지 말고 너와 어머님 둘이서만 먹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친구 어머님의 연락을 기다렸다. 이틀 뒤 택배업체로부터 오늘 중으로 소중한 상품이 도착한다는 배송 안내 문자를 받았다. 상품명은 ‘고구마 10㎏’. 어머님에게 간곡하게 계좌번호를 물었으나 크리스마스/연말 선물이라는 답만이 돌아왔다. 묵직한 상자 안에는 고구마뿐만 아니라 은행 한 망, 매실같이 작은 키위가 가득 담긴 봉지도 들어 있었다. 휴게소 알감자 같은 키위의 생김새가 신기해서 혹시 이게 다래인지 검색도 해봤으나 아니었다.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고구마를 넓게 펼쳐 말렸다. 잉크 냄새와 흙내가 포르르 피어올랐다. 서늘한 곳에서 바람을 맞도록 며칠 두었다가, 따뜻한 오븐에 잠시 넣었다가, 40분쯤 냄비에 찌고 20분쯤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부엌에서 고구마 단내가 오래도록 빠지지 않았다.
고구마 말고도 사람들이 자꾸 나와 엄마에게 좋은 음식을 보낸다. 얼마 전 엄마는 남편을 잃고 나는 아빠를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카다미아초콜릿, 좋은 쌀, 사과 한 상자, 슈톨렌(독일 전통 빵), 내 몸통만 한 플라스틱 채반에 가득 담긴 갈비 세트, 법성포 굴비, 낱개 포장된 고급 무화과와 애플망고. 어떤 품목은 나와 엄마가 아니라 아빠에게 보내진 것만 같다. 이 집엔 입이 두 개뿐이며, 이미 냉장고가 터질 것 같다고 간청해도 현관에 택배가 쌓인다. 살라는 명령처럼 느껴진다. 내 기분이 아니라 식재료의 기한에 맞춰 몸과 손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 부담스럽고 아득해 주저앉았다가 복수하듯 냉동피자로 때우는 저녁도 있다. 그러나 나 같아도 그렇게 할 것이다. 혼자서 다 못 먹을 양의 고구마를 포장하고 꼭 너 혼자 다 먹으라고, 그러고도 남으면 버려버리라는 쪽지를 쓸 것이다. 버리는 일의 지난함과 비참함을 다 알고도. 그 방법밖에는 남은 게 없을 것이다.
흔한 위로를 하고 싶지 않다, 정확한 말을 주고 싶다, 따위의 말을 자주 썼던 것 같다. 내가 처한 상황과 처지의 특수함에 꼭 알맞은 위로를 욕심내던 때까지는 아직 그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던 게 아닐까 의심한다. 요즘에는 닳고 닳은 말, 구태의연한 위로가 좋다. 밥 잘 먹어야 한다고 메기면 지나치게 잘 먹고 있다고 받는, 오래된 노래 같은 대화가 좋다. 여기 없는 언어를 발명하려는 창의력도, 받는 이를 감탄케 하리라는 은밀한 욕심도 다 내려놓은 덧없는 시도들, 다만 타인의 상실 앞에 우리가 얼마나 답도 길도 잃어버리는지를, 우리가 그토록 진부하다는 점에서 똑 닮은 종이라는 사실을 어렵게 인정한 뒤에야 건넬 수 있을, 그런 낮디낮은 친절함이 좋다.
글·사진 안담 작가
*냉장고와 도마 앞에서 하는 생각들. 사라지고 나타나는 한 그릇의 음식에 대해 씁니다. 출출할 때 참고하세요.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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