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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캡, 블랙캡 아성을 흔든다

등록 2006-10-21 00:00 수정 2020-05-03 04:24

낡을수록 자랑이던 카이로 택시 시장에 서비스로 무장한 노란 택시 등장

▣ 카이로=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카이로는 살아 있는 ‘자동차 노천 박물관’이다. 나귀가 끄는 수레에서 마차, 낙타 수레는 물론 20~30년은 족히 넘는 낡은 자동차부터 최신식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모두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카이로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차선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차선위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단횡단 딱지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건 자기 멋대로 차도를 횡단하곤 한다. 인도건 차도건 가리지 않고 사람과 기타 ‘움직이는 것’으로 넘쳐난다.

먼지가 많은 카이로는 도시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거리를 누비는 택시들도 검은색 바탕에 어두운 흰색으로 꾸민 이른바 ‘블랙캡’(검은 택시)이다. 현지어로 그냥 ‘탁시’ 또는 ‘우그라’로 부른다. 가뜩이나 도시 분위기가 어두운데 택시라도 밝은 색상이면 도시가 훨씬 환해질 것이란 바람마저 든다. 그런데도 ‘블랙캡’을 고집한다. 왜일까?

이유를 알고 보니 ‘블랙캡’은 대영제국의 문화유산이었다. 영국 런던의 명물 역시 ‘블랙캡’이다. 이집트는 과거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았다. 그 잔재로 이제껏 남은 것 중 하나가 바로 검은 택시다. ‘블랙캡’치고 새 차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집트의 ‘블랙캡’ 세계에선 차의 연식이 오래될수록 자랑거리가 된다. 카이로에서 택시를 탈 때마다 운전기사가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말은 ‘새 차’가 아니라 ‘오래된 차’에 대한 얘기다. 20~30년이 넘은 차량이 여전히 쌩쌩 잘 달리는 모습이 신통하기는 하다. 그러니 카이로에서 연식이 몇 년 안 된 새 ‘블랙캡’을 타려면 여러 날을 거리에 서 있어야 할 처지다. 이렇게 수십 년 된 ‘블랙캡’은 카이로 거리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왔다.

명물 ‘블랙캡’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미터기가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터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골동품 시장에 내놓는 게 차라리 어울릴 만하다. 그럼 택시 요금은 어떻게 낼까? 현지인들조차 택시를 타기 전에 요금 흥정부터 해야 한다. 물론 요금 시비는 기본이다. 승객과 기사가 요금에 합의하지 못하면 승차 거부가 당연한 수순인 듯 뒤따른다. 때문에 요금 흥정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일단 택시를 타고 자기가 생각하는 요금만 내고는 도망치듯 휑하니 사라지기도 한다.

또 한 가지 특징을 들라면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카이로 시내를 질주하는 ‘블랙캡’ 가운데 줄잡아 30~40%는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없다. 정확한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왼쪽 사이드미러는 추월할 때 많이 보게 되지만, 오른쪽 사이드미러는 차선을 바꿀 때 주로 쳐다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차선이 없으니 오른쪽 사이드미러도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최근 ‘블랙캡’의 아성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새 차량으로 무장한 노란색 택시(옐로캡)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옐로캡’은 일단 새 차다. 미터기도 제대로 작동되는데다 영수증까지 발급이 가능하니, 요금 시비를 할 까닭이 없다. 승차 거부 때문에 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서비스도 ‘블랙캡’에 비해 월등하다는 게 승객들의 중론이다. 승차 거부를 당하느라 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카이로 시민들이 ‘옐로캡’을 찾는 이유다.

하지만 한 가지, ‘옐로캡’을 찾는 승객들이 감내해야 할 아픔이 있다. 노란 택시는 아직 흔하지 않아 거리에서 쉽게 탈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갈 길 바쁜 승객들은 여전히 거리의 무법자 ‘블랙캡’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다. 짜증나는 요금 시비도, 엉망인 서비스도 여전히 감내해야 할 수밖에 없다. 검은 택시의 위력은 대영제국의 잔재마냥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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