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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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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 산타 오셨네!

등록 2006-12-22 00:00 수정 2020-05-03 04:24

몇 년 전만 해도 ‘고요한 밤’이었던 크리스마스의 놀라운 변신

▣ 암만=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이슬람 국가에서도 크리스마스가 있나요?”

이슬람권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고, 트리가 곳곳에 장식된 것을 보는 외국인의 심정은 묘하기만 하다. 이슬람 국가에서 맛보는 크리스마스, 이상할 법도 하다. 외국인들도 낯선데 현지 무슬림들이 느끼는 감정은 오죽하랴. “이슬람 국가에서 어떻게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를 축하해야 하는가?” 볼멘소리를 내는 무슬림들의 목소리도 뒤엉킨다.

성탄 트리로 연말연시를 장식하는 현지 무슬림들도 늘어간다. “연말연시 분위기도 나고 예쁘잖아요. 예수는 무슬림들에게도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분인데 그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나쁠 것도 없고요.” 20대 후반의 움 아흐마드 같은 신세대 주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아랍 이슬람 국가에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심심’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이 내리지 않아서도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그야말로 소수에 의해 지켜지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아랍인 교회나 외국인들이 모이는 교회를 가야 예배당 안에서 울려퍼지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이슬람 국가라고 하지만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의아스러울 정도로, 크리스마스는 극소수 기독교인들만의 명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변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른바 ‘성탄 특수’가 느껴질 지경에 이르고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파는 업소나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걸린 업소들이 늘어간다. 가끔 방송에서 울려나오는 캐럴도 들을 수 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고급 호텔이나 대형 매장은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하다.

“두바이에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 찬 쇼핑몰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요! 지난해만 해도 일부 대형 쇼핑몰에서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올해는 동네 작은 가게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2년째 두바이에 거주하고 있는 이상욱(26)씨의 눈에도 변화하는 두바이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인상적이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와피시티 몰, 10m가 넘는 거대한 성탄 트리가 익숙한 성탄 캐럴과 함께 빤짝이고 있다. 산타클로스 장식으로 가득 찬 공간도 눈에 띈다. 유럽이나 미국의 크리스마스 장식에 견줄 만한 수준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어떻게 라마단이나 이슬람 명절 때보다 더 많은 장식 비용을 소모할 수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무슬림들도 적지 않지만, 다수의 외국인들에게는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를 안겨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1월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 정교회의 크리스마스인 1월7일을 국가 공휴일로 정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에서 다른 종교의 명절을 허용할 수 없다는 이슬람계의 반발도 작지 않았지만, 소수 기독교도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조처였다. 이보다 앞선 1996년 이슬람 왕정 국가인 요르단에서는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법정 공휴일로 지정했다. 크리스마스 예배 실황이 생방송되거나, 정부 관계자가 자리를 같이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한다. 이 밖에도 시리아·레바논·지부티·팔레스타인 등이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정해놓고 있다.

물론 아랍 이슬람 지역에서 높아지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관심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아랍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기울인 때문도 아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면과 상업적인 배려가 어우러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젊은이들이 즐기는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아랍 젊은이들 가운데 번져가는 밸런타인데이, 핼러윈데이처럼 특별한 이벤트를 벌이는 날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도 이슬람권에서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나누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터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세계인의 연말연시 이벤트를 함께 즐기면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 간 ‘충돌’이 아닌 대화와 공존을 실험하는 마당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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