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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는 왈룬어를 모른다

등록 2007-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백과사전, 교과서에서도 발견되는 벨기에에 대한 잘못된 사실들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요즘 한국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벨기에 관련 기사나 정보를 접하게 된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벨기에에 대해 아는 이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개중에는 잘못 알려진 것도 꽤 많다. 여행 정보는 물론이고 백과사전, 심지어는 교과서에서까지 잘못된 것이 발견된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벨기에는) 발롱(Wallon)과 플라망으로 갈라져 영구히 분리하려고 열심히 투쟁한다. …서남부의 발롱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동북부의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플랑드르어, 곧 네덜란드어가 공용어로 뿌리 내리고… 동남부 리에주 지방에서는 독일어를 쓰고 있으니….”(Encyber,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준다, 브뤼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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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발롱’이라는 발음이 틀렸다. ‘Wallon’은 벨기에에서 ‘왈롱’이라고 읽는다. 또한 벨기에는 서북부와 동남부 쪽으로 다소 길쭉한 모양이다. 따라서 서남부, 동북부 운운 역시 잘못이다. 바르게 고치자면 ‘브뤼셀을 중심으로 동남부 지역은 프랑스어가, 서북부 지역은 플랑드르어가…’가 된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리에주 지방은 프랑스어권 지역이다. 리에주에서도 말메디와 유펜이라는 두 마을이 독일어권 지역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명백히 프랑스어권 지역이다.

특히 위 인용문은 마지막 부분에서 “그랑플라스 노천카페에서 감자튀김에 맥주를 한잔 마셔보라”고 권하고 있는데 이는 벨기에에서는 어색한 일이다. 벨기에인들은 감자튀김을 맥주 안주로 먹지 않기 때문이다. 벨기에인들은 맥주만 그냥 마시거나 서비스로 주는 견과류나 올리브 또는 치즈와 함께 먹는다. 벨기에가 맥주로 유명하고 감자튀김의 원조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표현으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이런 권유는 분명 어색하다.

다음은 한 블로거의 인터넷 기사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필리프 왕자는 인기가 바닥이다. 여기에는 플랑드르와 왈로니아의 지역 갈등이 한몫하고 있는데, 현재의 국왕이 플라망어와 왈론어 둘 다 능숙하게 구사하는 반면 왕자는 왈론어밖에 할 줄 모른다….” 현 벨기에 왕 알베르 2세는 2남1녀를 두고 있는데(필리프, 로랑, 아스트리드) 이들은 모두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를 잘 구사한다. 왕실에서는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외적으로는 벨기에 3대 언어(독일어 포함)를 모두 구사한다.

공무원도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를 모두 구사해야 임용이 되는 마당에 왕실 사람이 플라망어를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텔레비전 방송을 봐도 필리프가 플라망 지역에 방문했을 때는 반드시 그곳 언어로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왕실의 플라망어가 다소 서툴다고 불평을 하지만, 외국인이 지적할 정도로 못하는 수준은 아니다.

교과서에도 틀린 부분이 있다. 중·고교 사회(지리) 교과서에선 벨기에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왈룬어와 플레미쉬어’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어와 플라망어(또는 네덜란드어)’라고 해야 옳다. 벨기에에서는 ‘왈룬어’(혹은 왈론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이는 마치 “한국의 경상도 사람들은 영남어를 쓴다”고 하는 것과 같다(플라망어는 지역 이름대로 그냥 플라망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 설명은 나중으로 미루겠다). 마찬가지로 한 대학 교수가 쓴 이란 책의 ‘언어의 경계들’ 편에서도 ‘왈룬어와 플라망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역시 잘못된 것이다.

이외에도 발견되는 틀린 표현(Bressellois → Bruxellois)이나, 잘못된 문화 소개(벨기에인들은 ‘스머프’나 ‘플랜더스의 개’를 자랑한다 → 벨기에에서는 ‘스머프’라 부르지 않고 ‘슈트롬프’라고 부르며, ‘플랜더스의 개’에 대해 아는 벨기에인은 극히 드물다)는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이런 것들은 작은 오류들로 치부될 수 있지만 큰 오해가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을 외국에 바로 알리는 운동이 자주 진행된다. 이제는 더 나아가 잘못 알려진 외국의 역사나 문화를 한국에 바르게 알리는 작업도 함께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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