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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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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흡연 ‘전통’을 지킨다

등록 2006-11-24 00:00 수정 2020-05-03 04:24

강력한 공공보건증진법에 아랑곳 않는 ‘흡연자의 천국’ 요르단

▣ 암만=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다 적발되면 벌금이 15만원, 아니면 구속!’

요르단에서 지난 5월 발효된 ‘공중보건증진법’ 내용의 일부다. 법 발효 뒤 ‘이젠 공공 시설을 드나들 때 조금은 쾌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공항 내 수하물 코너는 물론 공공 시설물 안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이들 때문에 비흡연자로서 고생이 막심했다. 그런데 웬걸….

얼마 전 이웃나라를 잠시 방문하고 항공편으로 요르단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항 수화물 코너는 물론 입국 심사대 주변에서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담배를 피워물었다. 카이로에서 암만까지 오는 1시간 남짓한 비행시간 동안 피우지 못한 담배를 맘껏 ‘보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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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암만에서 중상류층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인 ‘메카몰’이란 쇼핑센터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관에서부터 곳곳에 ‘금연’을 강조하고 있지만, 매장 안에선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이곳은 공중보건증진법 규정에 따라 흡연이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규정을 위반하면 범칙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요즘 요르단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금연 표지판 문구다. 자세하게 법 규정까지 적어둔 곳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어디를 가도 금연 표지판에 아랑곳없이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금연 표지판은 하나의 장식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여전히 요르단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 이들이 ‘골초’로 분류된다. 특히 청소년층에선 흡연 경험자가 50%를 훌쩍 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독자들이 궁금해질 게다. ‘아니 요즘 세상에 아직도 공항청사 안에서 흡연이 가능한 나라가 있나?’ 각종 공공장소는 물론 일반 건물 안에서도 흡연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한국과 요르단은 담배에 관한 한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지난 2001년부터 각종 법령에서 ‘금연권’을 강조해왔지만, 흡연을 줄이기는 쉽지 않았다. 요르단 정부가 처벌 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운전 중에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2만~4만원(한국 돈 기준)의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공공교통 시설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1만5천~3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공공 시설물 안에서 흡연할 경우엔 1주일~4개월간 구속되거나 최대 15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면 첫 적발시 3만원의 범칙금에 처할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았을 때는 6개월 이상의 징역이나 7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공중보건증진법의 금연 규정은 지금까지 나온 금연 관련 법령 중 가장 강력한 수준이다. 하지만 변화는 없다. 법 집행 6개월째를 맞고 있는 지금껏 이런 규정이 실제 집행되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 심지어 ‘금연’ 경고판 아래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경찰이나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니 ‘흡연 금지’라고 쓰인 안내문이 붙어 있는 택시 안에서 운전 중 버젓이 담배를 권하고, 자기도 한 대 피워무는 운전기사를 막을 방법은 없다. 며칠 전 택시를 탔다가, 담배를 꺼내무는 기사에게 따져물었다.

“아저씨, 택시 안에선 금연 아닌가요?”

“금연요? 그건 손님이 지켜야 하는 거지요. 운전기사에게 적용되는 법은 아니랍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당당한’ 대답이었다. “서구 따라잡기도 좋지만, 개인의 자유까지 침해하지는 말라”는 흡연자들의 목소리는 ‘흡연은 아랍의 전통’이란 주장과 맞물려 세를 키우고 있다. 그러니 병원이든 공공기관이든, 은행이든 상점이든, 심지어 밀폐된 엘리베이터나 버스·택시 안에서도 여전히 담배 연기는 어김없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흡연자의 천국’인 이곳에서 ‘혐연권’을 논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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