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시리아의 ‘선택적 반미’

등록 2007-03-03 00:00 수정 2020-05-03 04:24

전통적 ‘반미국가’에 개방정책 따라 KFC와 펩시콜라 공장이 들어서

▣다마스쿠스=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시리아 하면 ‘반미 국가’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든 제재를 가하고 싶어하는 미운 털이 박힌 나라로도 다가온다. 또 부자간에 권력을 세습해 ‘북한식 사회주의’를 구사하는, 낙후되고 폐쇄된 국가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 증거의 증거의 하나로 “시리아 곳곳에 죽은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의 동상이 건재해 있다”는 말이 통용된다. 그러나 시리아는 개방과 개혁으로 나가고 있고, 그 큰 변화의 물결은 시리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미국 패스트푸드점의 대표 격인 KFC가 시리아의 심장부 다마스쿠스에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월 초이다. “미국의 정책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그러나 미국산 먹을거리는 다른 문제다.” 타렉(27) 같은 젊은이들은 “미국 음식 문화에 틀에 박힌 반미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KFC 같은 미국산 브랜드에 힘을 실어줄 순 없다”고 말하는 자카리야(26) 같은 젊은이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햄버거나 닭튀김뿐이 아니다. 펩시콜라는 물론 아랍인들이 이스라엘 자본이라며 ‘왕따’를 하는 코카콜라가 시리아인들의 입맛을 잠식해가고 있다. 아랍에선 코카콜라가 많이 팔리는 나라일수록 친미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평가되곤 한다. 펩시콜라는 시리아에 공장까지 두고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시리아 시장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시리아에는 ‘짝퉁 음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또 지난 2004년 5월 이래 미국의 경제 제재 대상 국가임에도 지난해부터 시리아에는 미국 브랜드 의류 수입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아닌 개인과 기업 차원의 반응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말 서구식으로 잘 지어진 다마스쿠스 신시가지 한복판에 ‘샴 시티 센터’가 들어섰다. 샴 시티 센터의 등장으로 시리아인들의 쇼핑 문화는 큰 변화를 겪었다. 지하층을 포함해 총 4층 규모에 100여 개의 매장을 갖춘 그리 크지 않은 공간임에도, 이 쇼핑센터에 다마스쿠스 시민들의 관심이 온통 집중됐다. 외국산 브랜드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진 탓이다. 의류 판매점에 진열된 옷들도 서구풍 그대로다. 옷 한 벌에 평범한 봉급생활자의 한두 달치 월급을 다 털어넣어야 하는 고가품이 즐비하지만, 찾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 건물 3층의 포파이 식당에선 ‘미국식 피자’도 팔고 각종 청량음료도 내놓고 있다. “콜라 맛이 좋지요!” 이곳에서 샌드위치와 콜라를 먹고 마시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미국산 브랜드는 새로운 문화 코드가 돼가고 있다. 몸에 달라붙는 ‘밀착형 의상’으로 한껏 멋을 내고, 나름대로 노출 패션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2000년 7월 바샤르 알아사드(41)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시리아는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바샤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비롯한 경제개혁을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본주의식 시장경제 도입도 점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렇지만 부시 미 행정부는 현 바샤르 정권의 축출을 위해 시리아 내 반체제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올해 3월로 예정된 시리아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적극 개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한데 이런 움직임과는 반대로 바샤르 정권은 미국은 물론 ‘숙적’ 이스라엘과의 만남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시리아는 2004년 9월부터 지난해 7월 레바논 전쟁 직전까지 유럽에서 이스라엘과 비공식 접촉을 꾸준하게 이어왔다. 이런 비밀협상을 통해 골란고원 반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개방정책의 여파가 시리아 국민들의 미국 문화 향유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시리아인들은 미국산 먹을거리와 미국 브랜드의 옷을 소비하면서, 미국의 편향적인 중동정책을 반대하는 ‘선택적 반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사진은 메일로 보내겠음.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