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비슷한 민간요법이 살아 숨쉬는 향신료와 약초 가게들
▣ 암만=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중동을 여행하는 이들은 중동행 항공기에서부터 독특한 향과 냄새에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이른바 ‘아랍의 냄새와 향’ 때문이다. 아랍 지역 고유의 냄새는 음식은 물론이고 아랍 현지인들의 향수와 체취에서 풍겨난다. 처음 이 지역을 방문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냄새와 향이 거북스러울 수 있다. 중동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냄새와 향에 친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랍 지역에서도 유달리 아랍 냄새가 가득한 곳이 있다. 옛 시가지 시장 골목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향신료 골목이 대표적이다. 바레인의 마나마, 카타르의 도하,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이집트의 카이로 할 것 없이 모든 아랍 국가에 이런 골목이 있다. 향신료 골목은 향신료와 약초를 파는 가게들로 채워진다. 나무뿌리, 약초, 바위처럼 보이는 나무에서 뽑아낸 진액 덩어리, 각종 꽃과 풀을 말려놓은 것, 갈아놓은 것, 마늘이나 참깨, 겨자, 쑥갓, 아몬드 등에서 뽑아낸 기름 등 형형색색의 다양한 약초와 약재들이 넘쳐난다.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이라면 동물 약재는 거의 안 보이고 약초나 식물에서 추출한 약재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점이다. 다양한 생김새만큼이나 용도와 쓰임새도 다양하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옛 시가지에도 이런 약초 골목이 있다. 그야말로 ‘아랍 냄새’가 진하게 풍겨나는 곳이다. 그렇다고 약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한국의 약령시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중세 때 아랍의 전통의학과 의술은 서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서구 의술에 밀려 전통의술이나 민간요법도 쇠퇴 일로에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끓는 물에 이 가루를 풀어넣고 이틀간만 복용하면 나아질 거예요.”
“기름을 상처 난 부위에 발라두면 상처가 금세 아물 겁니다.”
“당뇨에 이 덩어리를 껌처럼 씹어먹거나 뜨거운 물에 풀어서 사용하면 효험이 있습니다.”
끝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민간요법의 처방전을 풀어 설명하고 있는 알하지 아흐마드(72). 그가 운영하는 자그마한 약초 가게는 약초 골목의 산 역사다. 약초 골목을 찾는 이들 중에는 여성이 많다. 몇 년 전 아부 사이드는 원인 모를 질병으로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랫부분이 부어오르면서 심한 통증을 느꼈다.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는 “우연찮게 약초 골목에서 민간요법 처방전을 받아들고 약초 찜질을 시작하고 나서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약초 골목의 민간요법 처방을 신뢰하는 이들은 단지 그곳의 약값이 싸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양약에 비해 그리 싼 편도 아니다. 아랍인들의 민간요법이 아랍인들의 체질에 더 맞는다고 믿는 이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다.
민간요법의 소리에 잠시 귀기울여보자. 감기에 걸렸을 때는 박하차를 마셔라. 박하는 소화불량에도 좋다. 위가 안 좋을 때는 우슬초차를 마셔라. 감기·기관지염·발열 등에도 좋다. 회향(산형과)은 구취 제거는 물론 변비·소화불량에 좋고 동맥경화 예방과 불면증에도 좋다. 당뇨에는 나무 진(현지에서 ‘룹반’이라 부르는)을 복용하라. 류머티즘이나 관절염에는 한달라(들외)를 갈아서 찜질을 하라. 합환채는 여성들의 가임 능력을 북돋워준다.
또 두통은 물론 복통·생리통·소화불량에는 얀순(회갈색의 아니스 열매)차를 마시면 좋다. 심한 복통, 천식과 구강질환, 류머티즘 등에는 근채(미나리의 일종)씨를 꿀에 발라 먹는다. 잠이 안 오고 속이 더부룩하면 카밀레차를 마셔라. 카밀레차는 위를 건강하게 해주고 신경안정제 구실도 한다. 상처가 덧나거나 가벼운 화상을 입었을 때는 몰약을 발라준다.
아랍인들은 내가 한국에도 전통의학과 민간요법이 있다고 말하자 의외라며 너무 반가워했다. 아랍 특유의 냄새에 익숙해지는 것과 아랍의 민간요법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현지인들의 깊숙한 생활 속에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의외로 아랍 세계에는 우리와 닮은꼴인 문화와 생활 풍속이 많이 남아 있다.
*전문위원들의 칼럼 ‘와일드 월드’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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