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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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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 천지개벽 중

등록 2006-12-07 15:00 수정 2020-05-02 19:24

올림픽과 엑스포 개최 앞두고 ‘대약진’… ‘열광’ 뒤엔 짙은 그림자도

▣ 상하이=우수근 전문위원 woosukeun@hanmail.net

“요즘 베이징에 가보면 ‘상전벽해’라는 말의 뜻이 실감난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낡은 주거지에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좁은 골목길이 시원스레 뻥 뚫리곤 한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정아무개(40)씨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천지개벽’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0년 올림픽 개최전에서 패한 뒤 심각한 환경오염과 만성적인 교통체증, 그리고 ‘올림픽 개최지로서의 시민의식’ 결여가 패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8년 올림픽 개최 신청 때 중국 정부는 이들 문제를 확 뜯어고치겠다는 계획을 담은 청사진을 내놨고, 개최지로 선정된 지금 이런 야심찬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개발독재 특유의 서슬 퍼런 권력 탓에 베이징은 지금 ‘대약진’의 몸살을 앓고 있다. 2008년 8월8일 개막하는 베이징 올림픽은 ‘녹색-인문 올림픽’을 구호로 내걸고 있다. 이를 위해 베이징 시당국은 공기 정화에만 2008년까지 약 1천억위안(약 12조5천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대기오염의 주범이던 택시와 버스는 전부 고급 차량으로 바꿀 계획이고, 베이징 시내에선 연탄 사용도 금지하기로 했다. 또 보기에 ‘흉한’ 낡은 주택단지도 모두 말끔하게 ‘재개발’하는 한편, ‘중국인의 심장’이라 할 톈안먼 광장에는 전체 44ha에 대리석을 깔 예정이다.

‘인문’ 올림픽 차원에선 중국인들의 ‘문명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들여 2010년까지 3단계로 나눠 이른바 ‘100만 가구 예절 배우기’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각종 포스터나 펼침막 등을 통해 ‘올림픽 시민다워야, 올림픽 시민이지!’라는 ‘문명화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중국인 스스로도 ‘수치’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의 환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엑스포는 우리에게 새 시대의 푸른 희망을 가져다줬다!“ 상하이의 한 대학에 재직 중인 위안(40) 교수는 또다시 흥분하고 만다. 그는 신흥 ‘엑스포교’ 신자 가운데 한 명이다. 엑스포 말만 나오면 만면에 희색을 감추지 못한 채, “상하이와 중국을 또 한 차례 크게 ‘대약진’시킬 것”이라며 엑스포를 ‘거룩히’ 기리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엑스포 개막까지는 아직 4년 정도가 더 남아 있지만, 상하이는 엑스포가 안겨다줄 떡고물을 기대하며 저마다 주머니를 한껏 열어젖힌 채 마냥 들떠 있다. 2010년 5월부터 10월까지 상하이를 가로 흐르는 황푸강 양쪽에서 열리는 엑스포를 위해 상하이 시당국은 약 250억위안을 투자해 100여 년 역사를 지닌 공업단지와 조선소를 엑스포 단지로 개조하고 있다. 아울러 2010년까지 상하이에 총연장 277km의 도시지하철도를 건설해, 상하이 지하철을 뉴욕이나 파리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확충한다는 구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올림픽 개최를 통해 최소 16억2500만달러의 수입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또 200만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돼, 중국 정부를 옥죄는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인 ‘샤강’(실업) 문제 해결에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또 엑스포를 기점으로 각종 전람회와 박람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면, 요식업과 숙박업 등의 동반 상승으로 중국 소비시장이 더 한층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중국 공산당 당간부 육성학교의 양(40) 교수 말을 듣다 보면, 올림픽과 엑스포 개최를 중국의 ‘고질병’에 대한 특효약쯤으로 여기는 듯싶다.

하지만 ‘열광’의 뒤안길에 드리워진 절망의 그림자도 짙다. 상하이의 한 주택가에서 자전거에 꽃을 실어다 파는 20대 초반의 한 청년은 “남들은 모두 들떠서 왁자지껄하지만, 나는 여기서 더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하기만 하다”며 “올림픽과 엑스포를 계기로 다른 사람들과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곁에서 불법 DVD를 팔고 있던 또래 청년들도 “올림픽이든 엑스포든 다 있는 사람들 얘기”라고 맞장구를 쳤다. 중국 정부가 국가적 ‘업그레이드’ 기회로 여기며 사활을 걸고 있는 올림픽과 엑스포, 13억 중국인 모두에게 그 과실이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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