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콩팥’ 바크람의 비극

등록 2007-01-26 00:00 수정 2020-05-03 04:24

2년 전 최악의 쓰나미 이후 잊혀져버린 피해 지역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지난 2004년 12월26일 인도양 일대를 휩쓴 지진해일(쓰나미)은 모든 면에서 사상 최악으로 기록됐다. 리히터 규모 9.17의 강진이 8분여간 이어지더니, 성난 바다가 거센 물결을 일으켜 인도와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와 타이 등 13개국의 뭍을 덮쳤다. 208만여 명의 이재민이 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만도 150만여 명에 이른다. 파괴된 가옥이 39만여 채나 되고, 손실된 어선도 10만 척을 넘어선다. 유엔 쓰나미 복구 특사 사무실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당시 쓰나미로 인한 실종자와 사망자가 23만여 명에 이른다.

[%%IMAGE4%%]

유례없는 재난에 직면한 국제사회는 ‘유례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각국 정부가 내놓기로 한 지원 금액(약 136억달러)은 피해 복구에 필요한 예상 경비(약 103억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응급 구호물품과 구호요원·의료진을 실은 비행기가 속속 피해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상황은 차츰 안정돼가는 모습이었고, 인류는 비극을 통해 서로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던 모양이다.

쓰나미가 할퀴고 간 지 2년여가 흐른 지금, 피해 지역에서 새로운 비극이 펼쳐지고 있다. 초기 응급구호에는 성공적으로 대처했던 국제사회가 재건·복구 지원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사이, 삶의 터전과 생계수단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가난한 어민들이 불법 장기매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인도 남부의 최대 도시이자 타밀나두주 주도인 첸나이의 빈민촌 빌리바크람은 장기매매가 기승을 부리면서 ‘키드니(콩팥)바크람’으로 불릴 정도라는 게 현지 언론들의 보도다.

이 1월16일 전한 첸나이 북부 에라나부르 지역 사례는 비극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에라나부르는 2년 전 12월 거대한 파도가 삽시간에 바닷가 마을을 통째로 삼켜버리면서 7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참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 1800여 가구 주민들은 지난 2년여 동안 어로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쓰나미가 할퀴고 간 뒤 내륙 쪽으로 12km나 떨어진 곳에 마련된 임시 거처로 옮겨간데다, 유일한 생계수단이던 어선까지 파손된 탓이다. 파괴된 가옥 가운데 그나마 복구가 이뤄진 것은 전체의 25% 남짓에 불과하다.

살길은 막막하고 삶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응급구호의 손길이 잦아들면서 끼니를 때우기조차 막막해졌다. 결국 주민들이 택한 것은 자신의 콩팥을 떼어내 불법 장기매매 조직에 팔아넘기는 극단적 행동이었다. 은 마을 주민들의 말을 따 “쓰나미 이후 최근까지 약 100명이 콩팥을 떼내 팔아넘겼다”고 전했다. 쓰나미가 덮치기 전에는 “한 해 기껏해야 2~3건 정도의 장기매매가 이뤄졌다”는 게 이 마을 어민회장 마리아 셀밤의 말이다.

쓰나미로 집을 잃은 틸라카바시 아가세쉬(30·여)는 지난해 5월 불법 장기매매 알선조직을 통해 콩팥 1개를 떼내어 팔았다. 알선조직은 거래 가격의 절반 이상을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갔고, 그의 손에는 4만루피(약 84만원)가 쥐어졌다. 아가세쉬는 이 돈으로 작은 식당이라도 하나 차려 가족들의 생계를 의탁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가족의 미래가 걸린 돈을 알코올중독자인 남편이 몽땅 날려버린 탓이다. 그의 남편도 한때는 바다에 기대 가족을 부양하던 어부였다. 아가세쉬는 인터뷰에서 “전에는 생선을 내다 팔아 조금이라도 돈벌이를 할 수 있었다”며 “콩팥을 떼어내는 수술을 한 뒤에는 복통이 심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직후만 해도 인도 당국은 신속한 응급구호 활동으로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복구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장기매매 관련 보도가 잇따르자 당국은 뒤늦게 단속에 나섰지만, 삶의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생계가 막막한 피해 주민들의 극단적인 행동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자연이 몰고 온 비극이 인간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