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스콘신 매디슨 시민의 열성적 노력으로… 타협과 상생 운동의 승리
▣ 매디슨=김낙호 위스콘신대 언론학 박사과정 capcolds@hotmail.com
“2007년에도 방송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 발표는 미국 내에서 가장 진보 성향이 강한 도시 가운데 한 곳인 위스콘신주 매디슨 시민들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 폐쇄 시한이 눈앞에 다가왔던 좌파 성향의 대담 프로 전문 라디오 채널 (theMIC 92.1)가 극적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비주류이긴 하지만 미국에는 진보적 대담 프로를 특화한 (www.airamerica.com)라는 라디오 채널이 하나 있다. 이 방송사의 특징은 음악 위주의 프로그램은 전혀 없고, 하루 종일 때로는 정색하고 때로는 만담풍으로 우익들의 우둔함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기에 바쁘다는 점이다. 그리곤 나름대로 청취자층이 있는 미국 전역에 진출해 현지의 가맹 채널을 통해 프로그램들을 송출하는데, 덕분에 나 등 재기발랄하고 날선 풍자가 돋보이는 유명 논객들의 프로그램을 해당 지역 방송사에서 들을 수 있다.
그런데 2006년 11월10일 난데없이 매디슨 지역의 가맹 방송 채널인 가 2006년을 끝으로 사라질 예정이란 발표가 났다. 채널을 소유한 방송사 경영진 쪽이 청취자도 적고 경영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 채널을 없애고, 우파 성향으로 유명한 산하 스포츠 채널을 2007년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예고된 기일을 불과 10여 일 앞둔 아침, 극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2007년에도 채널을 존속시키겠다는 계획이 전격 발표된 것이다. 방송사 폐쇄를 아쉬워하던 많은 이들은 몇몇 프로그램만이라도 인터넷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한편, 모금 운동을 통해 소규모 방송 채널 신설을 논의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실제로 폐쇄 결정이 발표된 뒤 한 달 반 남짓 동안, 매디슨 시민들은 열성적으로 채널을 살리기 위한 연대활동을 벌였다. 경영진들에게 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항의를 하는 한편, 수천 명의 서명 운동과 주말 거리 시위도 벌였다. 키슬레비츠 매디슨 시장과 지역 출신 볼드윈 하원의원, 파인골드 상원의원 등 유명 정치인들 역시 한목소리로 방송사의 결정에 유감을 표했다.
흥미로운 점은 항의 운동 대부분을 발레리 왈라섹이라는 28살의 여성 청취자가 조직했다는 것이다. 단 1명의 열성적인 개인이 나서고 모두가 뜻을 모은 방식으로 미국에선 좀처럼 전례가 없는 사기업의 결정을 번복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사태는 벌써부터 풀뿌리 운동의 모범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의 방송 지속 결정의 또 다른 주역으로 매디슨 지역의 자영업자들과 기업인들을 꼽을 수도 있다. 사실 방송사의 내부 자료를 봐도, 의 경영난은 애초부터 청취율 저조 때문이 아니었다. 이 방송은 약 3만 명의 동시 청취자를 확보해왔다. 이는 매디슨 지역 전체 25개 라디오 채널 가운데 11위, 뉴스 대담 전문 방송 가운데는 2위에 해당한다. 문제는 지역 특화 채널 14개 가운데 수익이 14위에 그쳤다는 점이다. 광고가 붙지 않았던 것이다. 하기야 매일 정치적인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불온한’ 토크쇼만 하루 종일 나오는 채널이 광고주들에게 상업적 매력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방송 중단 결정이 나온 직후부터 이 지역 자영업자들과 각 기업이 나서 너도나도 광고 시간을 구매하면서 채널 존속의 명분과 기반을 마련해줬다. 광고 시장의 호응을 통해 수익성이 개선될 전망이 보이자, 경영진도 결국 지역 시민들의 요구에 응해 2007년에도 계속 이 ‘좌파 대담 채널’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여기에 이번 사건이 시민사회에 주는 교훈이 있다. 정치인들까지 포괄한 폭넓은 호응을 바탕으로 명분을 쌓는 한편, 직접 상대인 기업의 핵심 목표인 수익성 측면에서도 서로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운동 방향을 찾아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 말이다. 명분이 있는 원칙을 기반으로 하되, 타협과 상생을 위한 운동이 될 때 결국 성공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법칙이 다시금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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