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의 후예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 못하는 이유는 혹시…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브뤼셀 중심가 ‘플라스 화얄’에 가면 큰 동상을 하나 볼 수 있다. 머리에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 큰 깃발을 든 채 말 위에서 힘차게 비상하고 있는 인물. 바로 고드프루아 드 부이용이다.
볼로뉴 백작의 둘째아들이었던 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카노사의 굴욕을 당했던 황제)를 위해 엘스터 전투와 로마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면서 유명해졌고, 특히 제1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면서 역사에 길이 남게 됐다.
1097년 그는 이슬람의 근거지 니케아 요새를 함락시켰고, 이어 도릴리온 전투에선 셀주크 영웅 아슬란이 이끄는 투르크 군대를 물리쳤다. 1099년엔 예루살렘에 입성해 기독교 왕국을 선포했고, 마침내 예루살렘의 초대 왕으로 추대됐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만이 예루살렘의 진정한 왕이라 하여 ‘왕’이라는 칭호를 사양하고 죽을 때까지 단지 ‘성지의 수호자’라는 이름에 만족했다. 그의 용맹함은 후세에도 알려져 14세기에 이르러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9명의 기사’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힐 정도였다. (나머지 8명은 헥토르·알렉산더·시저·여호수아·다윗·마카베우스·아서·샤를마뉴이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최초의 기독교도인 만큼 서구의 전설에는 그가 자주 등장한다. 전설을 음악으로 각색하기 좋아한 바그너는 저간에서 떠돌던 ‘백조의 기사’ 이야기를 오페라 으로 재탄생시켰는데, 여기에서 성배를 지키는 기사 로엔그린(그는 동생을 죽였다 하여 고소를 당한 브라반트 왕녀 엘자를 구하는 용사로 묘사됐다)은 고드프루아를 빗댄 것이라 한다. 또한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영웅 리날도의 무용담을 그린 헨델의 오페라 에서는 고드프루아가 리날도로 분해 등장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이 오페라를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이 오페라의 삽입곡 는 음반이나 라디오를 통해 쉽게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것은 고드프루아가 ‘성당기사단’의 모태를 창설했다는 전설이다. 소설 에선 그가 시온수도회를 창설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시온수도회는 움베르토 에코가 소설 에서 주장하듯이 성당기사단을 창단했다는 음모론의 주인공이다. 이들 소설에 따르면 십자군은 함락한 예루살렘의 헤롯 신전 밑에서 모종의 비밀을 발굴했는데, 고드프루아는 이것의 보존을 시온수도회에 맡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는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성당기사단이 창단됐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수되고 있다는 것이 음모론의 핵심이다. 결국 이 음모론에 따르면 다빈치나 히틀러도 일원이라는 성당기사단의 원조는 고드프루아인 셈이다.
이처럼 고드프루아의 전설은 과거든 현재든 서양 문화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동상이 왜 브뤼셀 시내에 서 있는 것일까? 우선 그의 영지였던 로렌이 현재는 벨기에·독일·프랑스 등과 함께 땅을 나누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로부터 벨기에 땅인 안트베르펜의 대표자로 인정받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가 벨기에 출신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또 바그너의 오페라 의 배경인 브라반트는 브뤼셀 외곽 지역을 말하는데, 로엔그린이 이곳의 기사라는 것은 그가 벨기에인임을 염두해둔 것이다.
게다가 1차 십자군 원정에는 고드프루아 외에도 제2대 예루살렘 왕이 되는 보두앵 1세와 플라망 공작 로베르 2세도 참가했는데, 이들 모두 지금의 벨기에 지역 출신이다. 결국 십자군 전쟁과 벨기에는 깊은 관계가 있으며 십자군 운동의 중심에 선 고드프루아가 브뤼셀 시내에 서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동상이 서 있는 브뤼셀이 현재 유럽연합의 수도 구실을 한다는 상징성이다. 투르크의 후예 터키가 오래전부터 유럽연합에 가입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진도가 더디기만 한 것도 어쩌면 브뤼셀 중심에 버티고 있는 고드프루아의 저주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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