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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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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벨기에 소녀의 죽음

등록 2006-07-13 00:00 수정 2020-05-03 04:24

안정돼 보이지만 같은 추잡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 유럽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요즘 벨기에는 뒤숭숭하다. 연일 터지는 강력 사건 때문이다. 지난 4월엔 한 청소년이 MP3 때문에 벌건 대낮에 강도에게 죽임을 당했고, 5월엔 어느 극우주의 청년이 총기를 난사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더니, 6월엔 유괴됐던 두 소녀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지난 6월28일, 스테이시 마히라는 7살 난 소녀와 나탈리 르멩이라는 10살짜리 소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벨기에 동쪽 프랑스어권 지역인 리에주에 살고 있던 두 소녀는 같은 달 9일 밤, 지역 축제 구경을 갔다가 실종됐다. 그동안 경찰은 언론에 사건을 공개하고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결국 실종 지역 근처의 하수구에서 두 어린이의 주검을 발견했다. 경찰은 곧 부검을 했는데, 두 어린이 모두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나탈리는 성폭행까지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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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찰은 실종 당일 두 어린이 주변에서 수상한 행적을 보인 압델 아이트 아우드(39)라는 아랍계 청년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용의자 아우드는 지난 1995년에 이미 7살짜리 조카를 성폭행한 혐의로 5년간 수감된 이래 몇 차례 성범죄 혐의로 수감을 반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우드는 범행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사건의 진실은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사건이 벨기에인들에게 특히 충격적인 것은 1996년 세상에 드러난 일명 ‘뒤트로 사건’의 재발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멜리사와 줄리라는 8살 동갑내기 소녀가 벨기에 한 시골의 창고에서 굶어죽은 채로 발견된 데 있다. 수사 결과 마크 뒤트로라는 사람이 어린이들을 유괴해 창고에 가둬두고 성 노리개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소녀가 숨진 이유는 이들을 유괴한 뒤트로가 사소한 문제로 경찰에 연행되는 바람에 그동안 이들을 돌봐주는 이가 없어 그만 굶어죽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뒤트로가 정치인 등 유력 인사들에게 숨진 두 소녀뿐 아니라 모두 6명의 어린이들을 성 노리개로 제공한 단서가 포착되어 사회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다. 사회의 지대한 관심 속에 수사가 진행됐지만, 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물인 어린이 성교 장면 비디오테이프가 사라지고 범인 호송 과정에서 뒤트로가 탈옥하는 등 사건 뒤에 모종의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금 뒤트로는 종신형에 처해져 수감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린이들을 유력 인사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니홀이라는 공연 기획자는 얼마 전 무죄로 석방돼 다시 한 번 사회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언뜻 보면 안정되고 풍요로워 보이는 유럽이지만 실은 추잡한 범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영화 과 같은 상상력이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은 뒤트로 사건이나 스테이시·나탈리 사건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의 일상 용어 중에 페도필(소아성애 도착자)이라는 말이 드물지 않게 쓰이는 것도 한 예다.

벨기에에선 12살 이하 어린이들은 등하교 때 반드시 보호자가 동반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를 보호자 없이 집안에 혼자 둬선 안 된다. 유괴나 화재 등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어린이 대상 범죄는 여전히 높다. 2003년 기준으로 벨기에 내의 어린이 성폭력 사건은 1990건(벨기에 통계청 자료)에 이르렀다. 인구 1천만의 중소국치고는 낮은 수치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벨기에에서도 방과 후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가는 어린이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들도 요즘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학교가 끝나면 부모가 타고 온 자가용에 몸을 싣고 과외하러 가기 바쁘다. 단지 과외가 우리와 같은 수학이나 영어가 아닌 체육이나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 다르다. 게다가 벨기에 어린이들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게임을 거쳐가야 한다. 바로 ‘페도필’ 증후군을 가진 나쁜 어른들을 피해 몸을 숨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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