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서 벗어나 향료 더하고 알코올 도수 낮춘 포도주 개발하는 프랑스
▣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koreapeace@free.fr
프랑스에 살고 있으니 포도주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사성 있는 글을 쓰다 보니 포도주와 관련된 사건·사고들은 꽤 잘 알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오랜 외국 생활에 건강 관리하느라 알코올을 그리 가까이하지 않고 있다. 포도주 맛을 논한다면 그리 목소리를 높일 수준이 못 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재미 삼아 해본 ‘포도주 상식 테스트’에서도 나는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포도주는 흔히 무엇에 좋다고 한다. 그게 뭔가? 1. 만찬모임 2. 간 3. 자신감 4. 심장.” 포도주 상식 테스트 질문 가운데 하나다. 1번으로 답을 꼽고 싶은 걸 꾹 참고 4번을 정답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건 포도주의 나라에 살기 때문이 아니다. 몇 년 전 귀국했을 때 한 경험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여름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프랑스에 살다 모국을 방문하는데 포도주를 안 사들고 갈 수 없는 일. 백포도주 2병을 챙겨갔다. 그중 1병을 선물받은 이가 “포도주가 몸에 좋아 한국에서도 인기라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며 반가워했다. 얘기인즉, (백포도주가 아니라) 적포도주가 심장에 좋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 많은 사람들이 적포도주를 즐긴다는 얘기였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사람들이 “포도주를 즐긴다”기보다는 몸에 좋다는 말에 “포도주가 인기 상품이 됐다”는 뜻이었다. 심장에 좋기로는 적포도주뿐 아니라 토마토, 마늘 등이 있다는 건 나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몸에 나쁠 게 없다고 하면서도 지나친 포도주 열풍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포도주 판매업자들의 마케팅 행각을 의심했지만, 그런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걸 좀 다르게 표현하면, 한국의 식품문화는 건강 논리만 적절히 갖다대면 쉽게 판매고를 올릴 수 있는 마케팅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장의 논리가 건강의 논리를 빌려 교묘하게 미화해놓으면 쉽게 소비자들을 현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음식은 병도 되고 약도 된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그립다.
한편 프랑스에서 포도주의 운명도 퍽 흥미롭다. 프랑스에선 1990년대 초 지나친 흡연과 알코올 섭취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예방법’으로 알코올을 미화하는 광고를 금지했다. 쉽게 말해 텔레비전 홈쇼핑 같은 데서 적포도주가 심장에 좋다고 떠들면서 판매 촉진 광고를 하면 위법이다. 법적 규제가 있음에도 포도주 문화가 꾸준히 이어져온 것은 포도주 전통문화와 명성의 힘이 크다.
그런데 세계화의 여파로 포도주 생산·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프랑스 포도주가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이 2000년을 전후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포도주에 향기를 더하고, 물을 섞고, 설탕을 더하고 하는 것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이른바 포도주 신세계들의 대량생산 및 대량판매 전략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시장의 논리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무기는 ‘전통을 준수하자’는 정통파의 고집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판매 늘리기 대책을 모색하던 프랑스 농업부가 3월29일 흥미로운 대안을 내놓았다. “세계화에 적응해야 한다. 생산자들이 꿈꾸는 포도주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포도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포도주 양조술 완화책이다. 스테인리스 통에 묵혀 생산하는 포도주에 나무향을 더하거나, 알코올 농도를 낮춘 포도주 생산 등이 그것이다. 인공향이나 알코올 농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은 포도주의 전통에 따르자면 반칙이다. 하지만 대량 생산·판매 시장의 논리가 그러하니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춘다”는 의도다. 여기에 “수출용에는 ‘프랑스’라는 로고를 부각시킨다”는 내용이 더해졌으니, 따져보면 이전보다 덜 프랑스적인 포도주에 ‘프랑스’만을 부각시키는 셈이다.
“소비자를 위한다”는 표현은 시장논리가 발달하면서 나란히 발달하고 있는 논거다. 여기서 소비자란, 자연의 산물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무궁무진한 소비 욕구를 가질 수 있는 욕망 덩어리 인간이다. 나날이 편리한 걸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콜라를 닮은 캔포도주를 만들어낼 날도 머지않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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