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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10가지 방법

등록 2005-12-08 00:00 수정 2020-05-03 04:24

작은 수컷 개 한 마리를 사거나, 자살방지센터에 전화를 걸거나…

▣ 브뤼셀=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외국에 살면 현지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언어적 어려움이나, 살아온 문화적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특히 첫 한마디 건네기가 어렵다. 다음은 벨기에에서 살 경우(일부 유럽 포함), 현지인들을 친구로 사귈 수 있는 일종의 노하우이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참고하시기를.

1. 개를 한 마리 산다. 되도록 수컷이며 작은 품종을 산다. 그리고 가끔씩 개를 끌고 산책을 나간다. 그러다 다른 개를 끌고 나온 현지인과 마주치면, 십중팔구 당신의 개는 추파를 던지거나(상대가 암컷인 경우), 시비를 걸어서(작은 품종이 대부분 더 신경질적이다) 말썽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경우 유럽인들은 상당히 너그러운데, 양쪽 개를 뜯어말리는 과정에서 서로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당신 개는 몇 살이냐, 먹이는 뭐를 먹이냐 등. 그 다음은 당신의 몫이다.

2. 관할 구청의 체류증 신청하는 곳을 찾아간다. 분명, 체류증을 신청하거나 연장하기 위해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 사이에 섞여 한참을 서성이다 이렇게 외친다. “이놈의 공무원들은 일처리가 왜 이리 더딘 거야!” 그러면 십중팔구 누군가 당신의 절규에 맞장구를 칠 것이다. 역시 그 다음은 당신 몫이다. 단, 이 경우 당신이 원치 않는 피부색을 가진 이가 호응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아침 일찍 동네 카페에 간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를 보면 혼자 사는 노인이 와서 아침 식사를 들거나 신문을 들척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때 옆 테이블에 앉아서 얌전히 커피 한 잔 시켜놓고 30분 정도 기다린다. 그러면 상대방 노인이 먼저 말을 걸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말을 걸지 않는다면 ‘North Korea’ 어쩌고 하는 제목의 책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는다. 노인의 반응은 즉각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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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미 시위를 하는 집회장에 간다. 세계화 반대 시위도 상관없다. 그런 시위는 워낙 자주 있으니 신문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다. 시위 장소에 가서는 주최 쪽에 피켓을 하나 달라고 한다. 당신은 특별한 피부색을 가졌으니 그들은 크게 환영할 것이다. 그 다음은 간단하다. 소리 높여 미국을 욕하면 된다. 많은 이들이 당신과 공통점을 찾기 위해 말을 걸 것이다.

5. 현지인들이 많이 모이는 회합에 갔는데, 대화 주제가 없어 외톨이라고 생각되면 용기를 내서 다음의 것들을 묻거나 주장한다. “터키는 꼭 유럽연합에 가입했으면 좋겠어.” “너, 혹시 블람스 블랑(벨기에 극우정당) 당원이니?” “유대인들이나 아랍인들이나 그놈이 그놈이지….” 긍정이든 부정이든, 상대방은 대부분 입에 거품을 물고 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단, 이 경우 그들과 반드시 친해진다는 보장은 없다(원수가 될 수도 있다).

6. 아주 가끔씩 열리는 한국 문화 축제에 간다. 거의 한인 동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지만 드문드문 현지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공연 내용을 잘 이해 못하고, 자신이 소수민족이 됐다는 사실에 기죽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으세요?” 그러면 그 사람은 친한 척하며 공연 내용을 시시콜콜 물을 것이다. 혹은 운이 좋아 그날 행사에서 경품이라도 받게 되면(그런 경품은 한국인들에게는 쓸모없는 한국 관광 안내책이거나 태극 무늬가 찍힌 조잡한 넥타이 핀인 경우가 많다), 그것을 당신이 점찍은 현지인에게 선물로 건네줘라. 아마 그 사람은 무척 감격해서 주말에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당신을 초대할지도 모른다.

8. 집 근처에 살고 있는 현지 꼬마들을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넨다. 그러면 그 꼬마들은 당신의 형편없는 외국어 발음을 비웃으면서 다음에 만나면 먼저 말을 걸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만나다 보면 어느새 그 꼬마의 부모들도 당신만 보면 웃을 것이다. 그 다음에 그들과 친해지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9. 자살방지 센터에 전화를 건다. 버스나 기차 안의 광고판 등을 유심히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친절한 상담원은 당신의 더듬거리는 외국어 실력에도 전혀 짜증을 내지 않고 성실하게 답해줄 것이다. 운만 좋으면 주변에 사는 현지인을 친구로 소개받을 수도 있다.

10. 마지막 방법이다. 건강에도 해롭거니와 장래 정계에 데뷔할 사람들은 금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정말 방법이 없다면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대학가나 어두운 카페를 골라 찾아가서 삼삼오오 모여 대마초를 피우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건다. “야, 그거 나도 한 대 줘.” 상대는 당신을 보고 처음에는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어눌한 모습에 끌려 한 대 건네줄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외국어인데도 그들과 대화가 무지 잘 통하고 있는 자신에게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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