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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자는 인상을 쓸까

등록 2005-08-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시싱아안 놀이’를 보며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심을 생각하다

▣ 수방(인도네시아)=서영철 전문위원 uzseo@hanmail.net

어디선가 한국에서 들었던 흥겨운 풍악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설마 인도네시아에서…. 처음에는 환청인 줄 알았는데 그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풍악 소리와 함께 ‘시싱아안’이라는 가마에 탄 아이들과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었다.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의 얼굴은 한국 풍악패들의 모습을 연상케 했고, 이 무리를 따르는 동네 사람들의 얼굴에는 흥겨움과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느끼면서 무리를 뒤쫓았다.

이들이 바로 순다족이며 순다족의 문화인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2천만명에 300여개의 종족으로 구성된 다종족 국가다. 그 중에서 순다족은 인구가 100만명 이상인 종족으로 서부 자바에 몰려 살고 있다. 순다족은 일상생활에서 대대로 자기가 사는 지방의 사투리와 함께 종족 언어인 순다어를 사용한다. 또 순다족은 예술을 사랑하고 체험하기를 즐긴다. 예술과 언어, 일상의 생활태도로 볼 때, 순다족은 대체로 솔직한 성격을 지니고 쉽게 즐거워하며 낙천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예술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은 ‘시싱아안’이라는 ‘사자놀이’를 창출해냈다.

‘시싱아안 놀이’를 보면 마치 한국의 차전놀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네명이 한 조로 2팀으로 구성되는 것이 다르다. 한국의 태평소 같은 ‘술링름방’과 한국의 징을 두개 매단 것 같은 ‘금풀’이라는 악기 연주는 ‘시싱아안 놀이’의 흥을 돋운다.

그러나 순다족의 ‘시싱아안 놀이’에서 한국적 정취를 느껴 함께 흥겨워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시싱아안 놀이’의 역사와 의미를 모르는 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시싱아안 놀이’에 사용되는 사자 얼굴을 보고 나는 “왜 저 사자는 인상을 쓰면서 무섭게 만들었나. 좀더 귀엽고 웃는 모습으로 만들어야지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기가 있지요”라고 인도네시아 문화를 평가하듯 말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인도네시아 현지인의 ‘시싱아안 놀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창피해서 어쩔 줄 몰랐다.

‘시싱아안‘이라는 말은 순다어에서 유래했는데, 정직하지 않은 ’거짓말쟁이 사자’라는 뜻이다. 두 마리의 사자는 식민지 제국인 네덜란드와 영국을 상징한다. 인상을 쓰고 무섭게 노려보는 사자의 얼굴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억누르는 ‘네덜란드인과 영국인의 얼굴’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시싱아안 놀이는 반드시 두 마리의 사자가 있어야 한다. 두 아이가 사자 위에 타는 것은 후세대에서 ‘식민지 국가를 이기고 독립’을 맞이하고 싶은 염원이 담겨 있다. 이런 시싱아안의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 ‘시싱아안 놀이’는 예술적인 배경에서가 아니라 식민지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시작된 정치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이던 시기와 영국 식민지 시기인 1840~1911년에 서부 자바에 위치한 수방군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이후에는 ‘시싱아안 놀이’는 인도네시아 순다족의 전통예술로 승화됐다. 현재 수방군에서 여는 모든 국가 행사와 개인적인 행사, ‘순낫’이라는 어린아이들의 할례 행사에 필히 불러 공연하게 한다.

수방군에서는 ‘시싱아안 놀이’에 담긴 고귀한 뜻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수백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시싱아안 페스티벌을 개최해 이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알려진 ‘시싱아안 놀이’ 공연팀 수는 약 165개고 예술가는 2695명으로 알려져 있다.

‘시싱아안 놀이’를 이해하기 이전에 필자는 선입견을 가지고 순다족 문화에 접근했다. 그 결과 독립의 의지와 차세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담긴 순다족 ‘시싱아안 놀이’를 단지 사자 얼굴에 나타난 외형적인 것만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되었다. 그러나 순다족의 ‘시싱아안 놀이’를 통해 다시금 다른 문화를 판단하기 이전에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한 인류학자는 “문화에는 우열은 없고 다만 차이만 있다”고 말했다. 지금에서야 이 말을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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