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아저씨 이거 당기면 몇km까지 나와요?”
이런 질문에 괜히 으쓱거렸던 라이더들 꽤 많을 거다. 이 모터사이클이 빠른 것은 엔진이 짧은 시간 안에 가속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과 라이더 사이에 큰 관련은 없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허영만의 만화 에서 로미가 민이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는가. “모터사이클과 너의 능력을 착각하지 마.” 하지만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초고속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머신을 갖고 있고 타고 있고 조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것, 그게 바로 라이더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시속 300km의 세계란 어떤 곳일까? 일본의 저명한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미야자키의 경험을 잠깐 소개해본다. “맨 앞자리가 3으로 시작하는 세계는 역시 달랐습니다. 그 경계선상에서 공력특성이 극단적으로 변모합니다. 공기의 밀도가 단단해져서 젤리처럼 변한 것을 뚫고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프런트 브레이크 레버를 손가락으로 밀고 있지 않으면 공력 때문에 제멋대로 작동해버리고 맙니다. 최근에 스즈키 하야부사로 고속주회로에서 312km/h를 테스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그의 라이딩 테스트 사진은 충격 그 자체였다. 후륜 타이어의 가운데 부분이 테니스공만 한 크기로 일정 간격으로 깎여나가 있었는데, 타이어의 일정 부위가 계속 지면에 닿으면서 견디지 못한 채 깎여나간 것이었다. 물론 저 정도 고속으로 계속 달릴 수 있는 상황은 일반 도로에서는 불가능한, 말 그대로 ‘특수상황’이다.
나도 잠깐이나마 ‘Over 270km/h’의 세계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 때는 세기말 신드롬이 넘실댔던 1999년. 당시 바이크는 가와사키 ZZR1100C. 장소는 경기도를 살짝 벗어나 충청도로 이어지는 한 도로. 그때까지 꾹꾹 눌러왔던 어떤 욕구가 사춘기 소년처럼 참지 못하고 폭발했고 그 리비도를 에너지 삼아 엔진이 넘어선 안 되는 영역까지 금세 도달해버렸다.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마이크 타이슨’(!)이었다. 타이슨의 강펀치는 발목에서 나온다. 발목이 돌면서 회전력의 기점을 만들고 무릎이 따라 돌고 허리를 통해 온몸이 트위스트되면서 그 힘은 정점에 이른다. 그 어마어마한 힘을 어깨를 타고 주먹 끝에 실어 내보내면 끝. 마치 바이크 안에 마이크 타이슨이 들어 있는 듯 일말의 후퇴도 없이 전진 스텝만 밟으며 엄청난 파워의 양손 훅을 계속 날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굉음이 귓속을 파고들듯이 들려왔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사태가 일어났다. 엄청난 양의 공기가 헬멧 안으로 유입되고 내피와 외피 사이 공기 통로까지 휘젓고 다니면서 그 안에 있던 여러 불순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트럭 뒤를 쫓아가다가 뒤집어썼던 먼지들, 빗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달렸던 낭만적인 기억들. 응당 그때 사라졌어야 했는데 공기 통로 안에 남아 있던 진득한 형태의 구정물 같은 것들이 풍압 때문에 역류하면서 헬멧 보호유리 안쪽으로 커튼처럼 쳐지면서 시야가 가려진 것. 아마 이때가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린 내 생애 첫 번째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직 프로레슬링 데뷔 전이었으므로.
이제 모터사이클 속도계에서 300이란 숫자는 볼 수 없다. 유럽 등지에서 안전과 환경을 이유로 여러 규제가 시행됐고, 메이커들도 그 정책을 충실히 따라갔다. 나도 이제 그 영역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물론 모터사이클을 사랑하긴 하지만 적정 속도에서 안정감 있게 달리는 것을 더 훌륭한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더 줄여 말하자면 나이를 먹었기에. 그래도 가끔 그때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거리고 웃는다. ‘난 반경 100km 안에서 가장 빠른 남자다!’ 이런 허세 쩌는 문장을 부끄럽게도 입 밖으로 소리 지르며 스로틀을 열었던 20대라니. 2015년이 되고 나니 더욱 아득해 보인다. 지금은 아예 마이크 타이슨이 누군지 모르는 젊은이도 많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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