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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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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스러운 항공사라니!

운항비용 최소화·높은 추가 수수료·아웃소싱 고용 등… 악평 쏟아지지만 ‘가격’ 내세워 승승장구하는 라이언에어의 ‘악명’
등록 2015-02-13 15:34 수정 2020-05-03 04:27

임성한표 드라마는 드라마적 장르를 일컫는 보통명사가 된 것 같다. 지탄을 받는 내용일지라도 논란만 이어지면 높은 시청률과 광고판매율을 자랑한다. 이 드라마는 항공사 버전도 있다. 이용객들이 뽑은 ‘최악의 단거리 항공사’로 선정됐고, 는 왜 그토록 사람들이 이 항공사를 싫어하는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까지 했다. 2011년 스페인의 한 섬에서는 기내수하물 수수료가 비싸다고 항의하는 학생 104명을 공항에 두고 떠나버리는 ‘마성의 대범함’을 보여줬다.

유럽의 대표적 저비용 항공사(LCC)인 라이언에어 소속 항공기의 모습. 한겨레 자료

유럽의 대표적 저비용 항공사(LCC)인 라이언에어 소속 항공기의 모습. 한겨레 자료

서른 살을 맞은 유럽의 대표적 저비용 항공사(LCC)인 라이언에어(Ryanair)가 그 드라마 주인공이다. 라이언에어는 15명을 태울 수 있는 한 대의 프로펠러 비행기로 시작해 1990년대 초 LCC로 전환, 현재 189명을 태울 수 있는 보잉737을 300대 이상 운용하는 초대형 항공사가 됐다. 운항비용을 최소화하고, 일체의 부가서비스가 없으며, 기내수하물까지 수수료를 부과하는 등 항공권 값보다 높은 수수료로 악명이 높다. 심지어 기내 화장실도 유료 전환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이 항공사보다 유명한 건 33살에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이클 올리리다. 그는 막장에 가까운 파격적인 발언으로 늘 언론의 주목을 받는데 “기내에 포르노를 허하라, 안전벨트 왜 매야 하는가, 조종사는 한 명만 태워도 된다”고 주장해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게다가 대중교통 전용차선을 이용하기 위해 택시 번호판을 구입해 자기 차에 붙여버린 사람이다.
라이언에어의 성공 요인은 이 논란의 경영자가 가진 ‘탁월한 경영능력’도 중요했지만 1990년대부터 가속화된 마거릿 대처로 대표되는 유럽식 신자유주의적 전환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보호주의로 규제가 강했던 항공산업은 1990년대부터 탈규제화 바람이 불어 시장 진입과 노선 개척이 쉬워졌다. 기업가적 가치가 가장 중요해진 지방정부들은 앞다퉈 관광산업을 일으키겠다며 라이언에어에 각종 혜택과 보조를 쏟아부었다.
고용 유연화와 노동권 축소 등은 이 항공사가 최고의 효율성과 최저의 비용을 추구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소수의 기장급 조종사만이 아웃소싱 업체로 고용돼 있을 뿐 대부분의 조종사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시간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흑자 상태여도 비수기에는 하루아침에 해고를 단행한다.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사회보장 비용도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심지어 유니폼도 직접 구입해서 입어야 한다. 시간제 수당을 받고 있는 승무원 역시 비성수기에는 한 달에 900유로(약 11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들은 모두 회사 입장에서 성스러운 ‘가격’을 위협하기에 최소화해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이 항공사에서 일하는 많은 청년들은 88만원 세대의 유럽판인 ‘1천유로 세대’로서 이 회사가 비용을 최소화해 싼 가격으로 판매하고 소수의 주주에게 대부분의 이익이 집중되는 구조를 완성하는 데 최적화된 사냥감이다.
하지만 라이언에어는 지난 한 해에만 8600만 명이 넘는 승객을 수송해 유럽에서 단일 항공사로서는 최고가 됐다. 누군가의 노동권과 안정적인 삶은 최소화해야만 하는 절대악으로서의 비용이 됐고, 가격이란 그 착취와 악랄함마저 눈감게 만드는 마법이 됐다. 아무리 악평이 쏟아지고 논란이 돼봤자 가격이라는 자극만 있다면 된다는 걸 보여준다. 이처럼 막장 드라마의 승승장구는 TV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격과 비용의 주술에 걸려버린 세상의 도처에 있다. 이규호 미국 일리노이대학 인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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