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덕열전의 첫 글을 나는 베트남의 하노이 공항에서 썼다. 비행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또 놓쳤다. 베트남의 호찌민 공항에서 말이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구질구질해도 변명을 해보자면 아침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들어올 때 15분 정도면 공항에서 숙소까지 택시로 오길래, 출근길이 아무리 막혀도 4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거라 믿고 밥을 먹었다. 게다가 택시기사가 내려준 출입구는 체크인 카운터가 아닌 푸드코트 입구였다. 개발도상국의 공항들은 종종 ‘진짜 공항 이용객’과 아닌 사람들을 출입문에서 걸러낸다. 호객꾼과 혼잡을 막기 위해서다. 그걸 깜빡하고 순진하게 어떤 문으로 들어가도 체크인 카운터가 나온다 생각했다. 덕분에 국제선 청사 끝에서 끝을 걸었고, 다시 나와서 제대로 출입구를 찾아서 항공사 카운터에 도착했을 때는 수속 마감 시간으로부터 정확히 2분이 지나 있었다.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한 번 묻고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바로 체념했다. 항공업계에서 이미 자자한 일종의 스테레오타입- 원칙을 지키지 않고는 직원이 융통성을 안 부려준다고 화를 내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한국인 여행자- 을 재생하고 싶진 않았다.
35달러 정도 수수료를 내면 내일 출발 편으로 바꿔줄 거란다. 티켓을 날리는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비용항공사(LCC)가 이렇게 장사해도 되나 싶었다. 카운터에 갔다. 국내선 청사에 있는 카운터로 가라고 한다. 한참을 걸어 국내선 청사로 갔다. 카운터에 갔다. 사정을 얘기했다. 체크인 앞의 카운터로 가라고 한다. 줄을 섰다. 직원 5명이 멀뚱히 있다. 나도 멀뚱히 서 있다. 그 사람들이 오라고 하길 기다리면서.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온다. 그냥 카운터로 가서 용무를 본다. ‘아, 직원이 불러주기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냥 다짜고짜 가면 되는 거였지….’ 사정을 다시 말했다. 직원이 “알겠다”며 메모지에 글자를 쓴다. ‘LATE FEE’(지각 수수료). 조금 전 나를 보낸 사람에게 다시 가서 돈을 내라고 한다. 이해가 안 갔다. 그냥 처음에 문의했을 때 했음 될 일이다. ‘지각 수수료’라는 몇 글자를 받기 위해 다시 보낼 필요는 없었다. 다시 가서 수수료를 낸다. 직원과 일을 보고 있는데 다른 승객이 와서 다짜고짜 자기 용무를 얘기한다. 갑자기 화가 났다. 물론 한국에서도 (특히 중년 이상의 분들은) 종종 이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자기가 바쁘거나 자기 문의가 간단하다고 생각하면 남이 용무를 보아도 상관없이 끼어든다.
다음날. 늦지 않게 가서 체크인을 했다. 수하물 무게를 재던 직원은 3kg이 초과돼 기내 반입이 안 된다고 말한다. 보통 일반 가방과 노트북 가방 두 개는 반입이 되는 게 상식이라, 난 기내 수하물 규정(7kg 이하)이 전체를 합한 무게가 아닌 가방 각각인 줄로 알았다. 수하물 비용을 내고 들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그러란다. 3kg이 넘은 수하물 비용이 많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추가 비용의 최소 단위인 15kg 요금을 내야 한단다. 35달러를 더 냈다.
애초에 늦었을 때 표를 깨끗이 포기하고, 그날 곧바로 기내 수하물을 10kg까지 허용하는 다른 저비용항공사를 탔다면 110달러 정도면 됐다. 결국 돈을 조금 아끼려 했다가 수수료를 옴팡 물었다. 원래 왕복 11만원에 산 티켓이었다. 편도 1100km나 되는 국제선 구간을 베트남의 저비용항공사는 출발 5일 전에도 11만원에 팔았다. 공항이용료 등을 제외한 순수항공료와 유류할증료만 따지면 4만4천원이었다. “이만큼 받고 사람 태워줘도 되는 거야?” 항공사를 진지하게 걱정했다. 연예인 걱정만큼이나 내가 하지 않아도 됐을 걱정이었다. 아무리 한 번 늦어도 그렇지, 그렇게 사람을 ‘뺑이치게’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이규호 미국 일리노이대학 인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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