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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모드 셀렉트, 어디 없소?

빗길·도심 등 도로 상황 따라 모터사이클 엔진 성향 바꿀 수 있게 한
‘모드 셀렉트’, 인생 방향도 간단히 바꿀 수 있다면…
등록 2014-11-08 18:01 수정 2020-05-03 04:27

최근 나오는 대배기량 모터사이클에는 ‘모드 셀렉트’(Mode Select)라는 기능이 있다. 대부분 핸들 왼쪽 스위치 뭉치에 달려 있는 레버로 조정한다. 모드 셀렉트는 상황에 따라 레인(Rain), 스트리트(Street), 슈퍼 스포츠(Super Sports) 모드 등 서너 개 가운데 하나를 정해 엔진 특성이나 그와 연관된 서스펜션 설정을 바꿔주는 기능이다. 살짝 누르기만 해도 엔진 성향이 완전히 바뀐다.

오토바이의 핸들 왼쪽 스위치 뭉치 모습. 최근 나오는 대배기량 모터사이클에는 이 부분에 ‘모드 셀렉트’ 기능이 추가돼 있다. 가와사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오토바이의 핸들 왼쪽 스위치 뭉치 모습. 최근 나오는 대배기량 모터사이클에는 이 부분에 ‘모드 셀렉트’ 기능이 추가돼 있다. 가와사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이 스위치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른바 ‘리터급’인 1천cc가 넘는 모터사이클을 탔을 때가 생각난다. 1996년일 거다. 나는 한 단란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수입이 꽤 좋았다. 내가 단란주점을 택한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영화 에서 톰 크루즈가 타고 나왔던 ‘가와사키 GPZ’의 후계 모델인 ‘닌자1100’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아야 했다. 한푼 두푼 모으자 드디어 꿈에 그리던 닌자1100을 중고로 살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다. 정식 수입처도 없는 상태에서 게다가 몇 년 동안 주인이 바뀌면서 이 머신을 제대로 돌보거나 다룰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코너에서 나뒹굴었다. 그때마다 닌자는 오장육부를 드러내는 대수술을 해야만 했다. ‘성능’을 보증할 수 없는 상태. 여기저기 꼼꼼히 살피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한 채 오토바이 판매점에 들어섰지만 그 웅장한 배기음에 마치 금요일 밤 홍익대 앞 클럽에서 욕정에 불타는 20대처럼 이성을 잃어버렸고, 난 어느새 잔금을 치르고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걸 타고 서울에서 경기도 송탄까지 내려오는데 경기도 과천 즈음에서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생애 첫 리터급 모터사이클. 출력은 무려 145마력. 비까지 내리는데 브레이크 상태도 알 수 없고 타이어는 중고라서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데 계속 미끄러졌다. 특히 복공판 위에서는 ‘아작’이 날 뻔했다. 엑스칼리버는 아더왕 정도 레벨이 돼야만 뽑을 수 있는 거구나. 아니 범인필부가 어떻게 겨우겨우 뽑아들었다고 하더라도 어설프게 휘둘렀다간 자기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거구나. ‘힘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필요하다.’ 이 말은 권력자에게만 유효한 문장이 아니었다. 라이더에게도 그대로 통용된다. 이 ‘책임’이란 단어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권력을 어떻게 휘두르느냐는 통치의 기술이며 폭정을 일삼으면 시민들이 들고일어난다. 대배기량 엔진 또한 어떻게 다루느냐는 어떻게 소유하느냐보다 훨씬 고차원적 문제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나온 게 모드셀렉트 기능이다.

요즘 나는 이처럼 간단하게 스위치로 모드 셀렉팅이 가능한 모터사이클이 부럽다. 인생에 대한 ‘모드’를 두고 고민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난 지금까지 오로지 한 방향, 탈모와 스킨십처럼 오직 ‘전진’만을 하는 남자였다. 어떤 욕망을 상정하고 나면 오직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내 몸과 영혼은 한 덩어리가 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트위터를 하면서 여러 사회문제에 관여 아닌 관여를 했지만, 어찌 보면 내 스스로에게 ‘나 이렇게 옳은 일을 하고 있어’라고 면죄부를 주거나 스스로 만족하는 자위 행위였을 뿐 그 자체가 삶의 태도, 즉 모드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4월16일 그날 이후. 난 전남 진도 팽목항에도 다녀왔고 시위에도 참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다가 혈압이 상승해 뒷목을 잡으며 ‘어휴’ 소리도 내고 이제 그만 중심을 잡자, 생업도 생각하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세월호 아이들이 나에게 묻고 있다. “아저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 슈퍼 스포츠? 레인? 스트리트?” 난 아직 선택을 못하고 있다.

김남훈 육체파 창조형 지식노동자·자동차는 비 올 때 우산 대용으로 쓰는 모터사이클 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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