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띠디 디디딩 띠디디딩.
“안녕하세요? 인데요, 원고를 좀 부탁드리려고요.”
“예? 무슨….”
“저희가 새로운 연재 꼭지로 ‘탈덕열전’이란 기획을 했는데요….”
헉! ‘탈덕’이라니. 우리 세계에서 탈덕이란 피터팬의 여친 웬디가 엄마가 되는 것이요, 반코트 내기 농구를 접는 것이며, 컵라면을 푹 익혀 먹는 것이고, 맥주 한 캔 안 따고 열차에서 내리는 것이자, 아침에 일어나 넥타이를 매는 것을 의미한다. ‘탈덕’이란 오랜 덕후 생활을 마감하고 속세의 일원이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내게 그런 귀순 기자회견문 같은 글을 쓰라 하는 건가? 이미 수많은 덕후들이 현실 문제에 부딪혀 고이 간직한 추억의 물건들을 박스에 넣어 먼지 쌓인 장롱 위 으슥한 곳에, 또는 마음속 깊숙한 칸막이 어느 구석에 밀어넣는 모습을 본 나로서는 기자와 통화하는 짧은 시간에도 여러 가지 상념이 교차했다.
“그러니까 항공기·오토바이·기차 등 ‘탈것’에 대한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연재하는 겁니다.”
아하.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속죄의 탑돌이나 고해성사가 아님을 깨닫고 한시름 놓았다.
덕후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비록 현실 사회에서는 무가치한 사람들로 취급되지만 한 번이라도 무엇인가에 미쳐보지 못한 인생이란 얼마나 가련한가? 최근 너도나도 인문학의 세상이 도래했다고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진정한 삶의 가치는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자본가들도 인문학 이야기를 한다. 한 가지 비밀을 털어놓자면, 언젠가 대홍수 때 맨홀에 빨려들어갔다 극적으로 빠져나온 뒤부터 나는 언론 기사나 책 제목 같은 것들의 실제 의미를 0.1초 안에 해독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 이를테면 ‘CEO가 추천하는 인문학 책’이란 제목은 ‘돼지들이 추천하는 진주 목걸이’로 즉각 번역한다. 별 거지, 아니 사장 같은 이들까지 인문학을 말하는 시대지만 인문학은 한계에 다다랐다. 진짜 인간을 위한 학문은 우리 덕후들, 이른바 나머지라 불리고 잉여로 통칭되는 인간들에 의해 새롭게 열릴 것이다. 그 이름하여 ‘잉문학’의 탄생이다.
일본 영화 에는 아빠와 아들의 대화 장면이 나온다. 초등학생 아들이 숙제를 도와주던 무명 가수인 아빠에게 “왜 쓸모없는 생활을 하느냐”고 묻자 아빠(오다기리 조)는 그동안의 장난기 어린 태도를 바꿔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세상엔 말이야, 쓸모없는 것도 필요해. 전부 다 의미 있는 것만 있어봐. 숨 막혀서 못 살아.” 우리 덕후이자 잉여들은 바로 이 정신, 쓸데없는 일에 미쳐 날뛰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미 오래전 마르크스 할아버지가 밝혔듯이 기업가들이 돈을 벌고 채권자가 이자를 받고 정부와 은행이 유지되는 이유 또한 밑바닥 인생이라 불린 사람들이 생산해낸 잉여가치 때문이다. 수학에서 나머지 기호는 영어 아르(R)로 표시한다. R는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신성시되는 문자이며 Railroad의 머리글자이기도 하다. 잉여, 나머지란 의미의 영어 단어 Remain의 뜻은 ‘살아남다’, 다시 주체가 된다는 뜻이다. 잉문학의 정신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속에는 꼰대들이 좋아하는 학력·서열·기수·동문·동향 같은 구역질 나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철도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전에 덕후에 대한 횡설부터 풀어놨다. 하여간 만국의 잉문학도여 기차를 타라! 전세계의 날라리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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