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어느 토요일 오후 출근길- 이런 표현은 이상하지만 기관사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겐 낯설지 않은 일이다- 에 시내 서점에 들렀다. 토요일 오후엔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았을 것 같은, 방금 배포된 시사주간지들이 진열돼 있다. 을 집어들어 훌훌 넘긴 뒤 ‘탈덕열전’을 펼친다. 원고 작성 때부터 수도 없이 보았던 내용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채 인쇄된 활자로 다시 읽는다. 그 뒤에야 첫 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계산대에서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다. 가격이 1천원 인상돼 있었다.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나 중국집 짜장면 한 그릇 값 정도이지만, 오른 가격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독자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여 나는 독자들에게 최소 수십만원 이상(!)의 혜택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인상된 가격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 구독을 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서다!
유럽 여행은 이제 특별한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근처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듣거나, 독일 하이델베르크성 담벼락에서 한국말 낙서를 보는 건 흔한 풍경이 돼버렸다. 이런 가운데 유럽 철도여행은 색다른 맛이 있다. 서민주택 단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유럽 여러 나라의 특성상 철도는 국경을 눈높이로 관통하는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한순간 방심했다간 ‘멘붕’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유쾌한 유럽 철도여행을 위해서는 몸에서 배낭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 2년 전 유럽 철도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베를린에 있는 독일철도공사를 방문했다. 다음 목적지인 프랑스로 가기 위해 베를린 중앙역을 찾았다. 우리 조사팀이 탈 열차는 오후 2시32분 베를린발 취리히행 ICE 873열차.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스위스 접경 독일 도시인 만하임역에서 파리로 가는 ICE 9550열차로 환승하면 끝이었다. 열차에 오른 우리 팀은 다른 철도 여행자들처럼 캐리어는 열차 객실 연결부의 화물칸에, 소형 여행용 배낭이나 손가방은 각자 좌석의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4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도착한 열차는 종단이 막힌 역의 특성상 열차 운전실을 반대로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들고 나는데, 이 중에는 여행자를 가장한 도둑들이 잔뜩 끼어 있다.
프랑크푸르트역은 이 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도둑들에게 참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4시간 정도 객차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10여 분의 자유 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특히 혈중 니코틴 농도가 부족한 여행자들은 너도나도 달려나가 승강장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대기하던 ‘도둑님’들은 열차 객실 내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빈자리 선반 위의 배낭들을 어깨에 메고 내린다.
열차가 출발한 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람들의 비명이 쏟아진다. 좌석과 선반 위에 놓아두었던 소형 가방들의 부재를 알게 되는 시점이다. 우리 일행 중에도 배낭 하나를 온전히 헌납당한 피해자가 발생했다. 배낭 안에는 서울에서 환전해온 수십만원 상당의 유로화, 디지털카메라와 메모리, 유레일패스, 여권 등 절대 잃어서는 안 될 것들이 들어 있었다. 배낭을 분실한 일행은 다음날 일정을 반납하고 한국 영사관부터 찾아야 했다. 벨기에 브뤼셀역에서는 내 눈앞에서 일행의 배낭을 어깨에 멘 ‘도둑님’을 발견하고 쫓아가 되찾아온 적도 있다.
나중에 다시 유럽에서 야간열차를 이용할 때였다. 통로 옆 좌석의 미국인 처자 둘이 담소를 나누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오자 선반 위에 놓여 있는 그녀들의 배낭을 보고, 주의를 주기 위해 그녀들을 깨웠다. 피곤한 눈의 아가씨가 작업은 사절이라는 투로 말을 막았다. 호의를 거절한 소녀들의 악몽은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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