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에서 주인공 체 게바라가 친구와 함께 모터사이클로 남미 여행을 하고 있는 장면. 한겨레
모터사이클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속도’라고 대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빠른 모터사이클도 많지만 느린 녀석도 많다. 내가 처음 엔진이 달린 바퀴 두 개를 접했을 때는 88cc 배달용 모터사이클로도 경기도 송탄 기지촌 인근 도로 위에서 가장 빠른 남자가 될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국산 중형 자동차도 엔진 출력이 어마어마하다. 물론 ‘마력 대 중량비’라는, 모터사이클이 가진 선천적 장점은 속도와 연관이 있다. 하지만 이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기엔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을 읽는 독자라면 체 게바라가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다. 구여친·구남친 사찰용으로 사용하는 구글 검색창에 ‘체’라는 단어를 치자마자 그 옆에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라는 단어가 자동 완성으로 뜬다. 이처럼 체와 그가 23살의 나이에 떠났던 모터사이클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만약 그가 영국 노턴(Norton)의 500cc 단기통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고, 자동차로 남미를 일주했다면 혁명가의 꿈을 꿀 수 있었을까?
체는 ‘외제 오토바이’를 탈 정도로 부잣집 아들이었고 본인도 의대를 다니고 있었다. 여기에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의 결정적 차이이자 미덕이 존재한다. 자동차는 강철로 만들어진 프레임 안으로 운전자가 들어간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자동차는 운전자에게 안전하고 온건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다르다. 라이더가 그대로 외부로 드러난 채 프레임의 일부가 된다. 핸들을 붙잡은 채 양다리를 땅에 디디고 있는 라이더 없이는 모터사이클은 혼자 서 있지도 못한다. 따라서 자동차가 외부 환경을 관망한다면 모터사이클은 체험한다. 경험의 질이 다르다.
우익 쿠데타 정부가 아르헨티나에 들어서면서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체는 서민들의 궁핍하고 신산한 삶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흙먼지 가득한 시골길을 달리며 착취당하고 있는 이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뙤약볕에 살이 타는 고통을 같이 느꼈을 것이다. 길 한켠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처럼 터벅터벅 걸어가는 촌로들 옆으로 ‘외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서 뭔가 설명하기 힘든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과일 바구니를 들고 가는, 가만히 있어도 얼굴에서 빛이 나는 동년배 여인네들을 보며 마음이 설레기도 했을 거야. 이런 감정들이 때론 티끌처럼 때론 뭉텅이로 밀려 들어오고 쓸려나가면서 자각과 성숙을 맞이하는 단초를 마련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베레모가 어울리는 체가 탄생했겠지. 자동차에 달린 강철 지붕과 유리창은 안전을 담보해주지만 그걸 빌미로 많은 경험을 제한하는 단점이 있다. 거꾸로 이 점이 모터사이클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체가 모터사이클이 아닌 자동차로 여행을 떠났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체 게바라에게서 ‘혁명가’라는 단어를 빼도 그는 많은 미덕을 지닌 사람이다. 아마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남미 풍토병 연구에 자신의 젊음을 바치고 흰 가운에 외눈 안경을 낀 모습으로 우리나라 교과서에 위인으로 소개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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